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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시선 2017 - ‘이주노동자들의 눈물’ 선정” 보도요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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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017-09-05 조회수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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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도 자 료

 

교회협 언론 2017 - 108호 (2017. 9. 5)

수 신 : 각 언론사

발 신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

제 목 : “8월의 시선 2017 - ‘이주노동자들의 눈물’ 선정” 보도요청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 8월의 「(주목하는) 시선 2017」에 ‘이주노동자의 눈물’ 선정

 

1.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위원장 이동춘 목사)는 8월의 「(주목하는)시선 2017」로 ‘이주노동자의 눈물’을 선정했습니다.

 

2. 지난 8월7일 충북 충주의 한 부품 제조업 공장 기숙사 옥상에서 네팔 이주 노동자 케샤브 슈레스타(27)는 “삶의 의미가 없다. 아무런 선택권이 없다”던 슈레스타는 “제 계좌에 320만원이 있어요. 이 돈은 제 아내와 여동생에게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짧은 유언을 남기고 목매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3. 2016년8월16일, 경기도 안성의 한 공장기숙사에서 필리핀에서 온 이주노동자 로델 아길라 마날로(35)가 사라졌습니다. 고향인 필리핀을 방문하고 돌아와 새로운 일자리가 있는 경북 상주로 떠날 예정이었던 로델은 고향방문 전 날 친구기숙사에서 쪽잠을 잤습니다. 다음날 로델은 여권과 지갑, 신용카드, 외국인등록증, 한국 돈 13만4천원과 미국 달러와 필리핀 페소, 인도네시아 루피아, 사우디아라비아 리얄 약간을 남겨둔 채 사라졌습니다.

  

4. 한국은 1991년 산업연수제라는 현대판 노예 제도를 만들어 저임금으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기형적인 제도를 도입하였습니다. 이때부터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가난을 탈출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대우도 받지 못한 채 저임금과 강제 노동, 산업재해, 폭언과 폭행 등 온갖 인권 침해와 차별을 견디며 살아야했습니다.

 

5. 산업연수생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보다 임금에서도 차별을 받았기에,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한 노동자 대다수는 자발적 혹은 제도가 강제한 비자발적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2003년 전체 36만명에 달하는 이주노동자 가운데 29만 명이 미등록 체류 상황이었습니다. 산업연수제도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2004년 도입한 새로운 제도가 고용허가제였습니다.

 

6. 고용허가제는 대한민국 정부와 이주노동자가 떠나온 고국의 정부가 노동자의 귀국과 귀환을 책임지도록 하였고, 이주노동자도 노동법에 따라 '노동자'로 인정하였습니다. 인권, 노동권 침해 방지를 위해서는 외국인노동자전용보험의 도입(임금체불보증보험, 출국만기보험, 귀국보증보험, 상해보험)과 고용허가제를 운영하는 관할 부처인 고용노동부의 사업장 관리 감독 등이 제도화되었습니다.

 

7. 그러나 여전히 이주노동자에게 한국에서의 삶은 고단합니다. 여전히 그들은 자신을 고용한 사업장에서만 유효한 고용허가서를 받을 수 있고, 체류기간이 만료되면 돌아가야 합니다. 가족결합은 허용되지 않고, 가족방문은 충분한 경제적 여유가 있음을 증명할 수 있을 때만 허용됩니다. 쇠고랑을 차지 않은 노예생활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8. 자세한 선정 취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귀 사의 보도를 요청합니다.

 

- 아  래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

8월의 「(주목하는) 시선 2017」에 ‘이주노동자의 눈물’ 선정

 

“즐거워 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롬12:15)”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위원장 이동춘 목사)는 8월의 「(주목하는)시선 2017」으로 ‘이주노동자의 눈물’을 선정했다. 이주노동자는 고향을 떠나 낯선 타향에서 외로움과 차별을 견디며 살아가는 이산자(diaspora)들이다. 가난을 이겨내기 위해 'E-9'이라는 낮선 고용허가비자를 받아들고 찾아온 나라에서 그들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외면당하고 멸시받았다. 그들은 자신이 일하고 있는 낯선 땅에 가족을 데리고 올 수도 없고, 통장에 잔고가 없으면 가족이 방문할 수 있는 비자도 받을 수 없었다. 물질을 숭배하는 고용주를 만나는 날에는 취업과 거주의 자유마저 박탈당하는 현실을 견뎌야 한다. 그들에게 희망은 가족과 함께할 수 있는 귀향이었지만, 귀향하기에 충분한 조건은 주어지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서 견뎌야하는 겨울이 긴 만큼 그들의 영혼은 불안하고, 불안은 그들이 영혼을 갉아 먹고 있다.

 

지난 8월7일 충북 충주의 한 부품 제조업 공장 기숙사 옥상에서 네팔 이주 노동자 케샤브 슈레스타(27)는 목매 숨진 채 발견되었다. 슈레스타는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오늘 세상과 작별인사를 합니다.”라고 유서에 자신의 심경을 남겼다. 슈레스타가 남긴  작별인사에는 “건강 문제와 잠이 오지 않아서 지난 시간 동안 치료를 받아도 나아지지 않고, 시간을 보내기 너무 힘들어서 오늘 이 세상을 떠나기 위해 허락을 받습니다. 회사에서도 스트레스도 받았고 다른 공장에 가고 싶어도 안 되고 네팔 가서 치료를 받고 싶다.”고 적혀있었다. 슈레스타는 결혼한 지 고작 3개월 뒤 부인과 여동생을 고향에 남겨두고 한국으로 떠나왔다. 부품 제조 공장에 취직한 슈레스타는 주·야간 12시간씩 2교대로 1년 7개월 일했다. 그러나 얼마전부터 그는 극심한 불면증을 앓았다. 지난 5월 회사는 슈레스타가 주간 근무만 하도록 근무시간을 바꿔줬지만 슈레스타가 뜬눈으로 지새우는 날이 늘어갔다. 그와 가까웠던 한 네팔 노동자는 “조용해서 잠이 잘 올 만한 공간을 슈레스타에게 빌려주기도 했지만, 건강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슈레스타는 다른 직장에서 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그러나 그리움에서 오는 불면증부터 먼저 치료해야했기에 고향에 다녀올 예정이었다. 하지만 슈레스타는 다시 고향에 갈 수 없었다. 외국인노동자가 합법적으로 일하기 위해서는 고용허가제에 따라 E-9취업비자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아내와 여동생이 있는 네팔에서 병치료를 끝냈을 때 다시 그에게 취업비자를 준다는 보장은 없었다. 내일의 불안은 그의 영혼을 좀먹었다. “삶의 의미가 없다. 아무런 선택권이 없다”던 슈레스타는 “제 계좌에 320만원이 있어요. 이 돈은 제 아내와 여동생에게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짧은 유언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2016년8월16일, 경기도 안성의 한 공장기숙사에서 필리핀에서 온 이주노동자 로델 아길라 마날로(35)가 사라졌다. 로델은 2012년 필리핀 바탕가스에 있는 고향집에 아내와 두 딸을 남겨두고 2626.48㎞를 날아와 경기도 광주의 한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로델의 별명은 “취미가 알바”였다. 그의 동료들이 붙인 별명은 존경 같기도 했고 놀림 같기도 했다. 로델은 자신이 일하는 공장이 쉬는 날인 주말과 공휴일에는 어김없이 친구가 근무하는 공장 근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박스 공장에서 일당을 받고 허드렛일을 하거나 과수원에서 배를 땄다. 가족에게 한없이 헌신적이었던 로델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대부분을 돈 버는데 바쳤다. 필리핀이주민 공동체에서 그는 농구를 잘하는 슈퍼스타였다. 그러나 ‘취미가 알바’일수록 주말농구대회에서 슈퍼스타로 갈채를 받을수록 로델은 두고 온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떨쳐낼 수 없었다. 외로움이 깊을수록 로델이 갖고 있던 우울증은 깊어갔다. 로델은 친구들과 일자리를 옮길 예정이었다. 로델은 야근을 해서 더 많은 잔업수당을 받고, 주말에도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그가 일하던 회사는 로델의 사정을 이해하고 이직할 기회를 주었다. 로델은 필리핀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새로운 일자리가 있는 경북 상주로 떠날 예정이었다. 고향방문을 위해 여행을 떠나기 전 날 로델은 친구기숙사에서 쪽잠을 잤다. 다음날 로델은 그곳에 여권과 지갑, 신용카드, 외국인등록증, 한국 돈 13만4천원과 미국 달러와 필리핀 페소, 인도네시아 루피아, 사우디아라비아 리얄 약간을 남겨둔 채 사라졌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지만 그의 친구들은 여전히 로델이 마지막 쪽잠을 잤던 경기도 안성의 한천변과 그 주변에서 로델을 찾고 있다. 로델의 아내는 메리 앤 아수그 마날로(35)는 사라지 남편을 찾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고 싶었지만,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은 비자를 발급해주지 않았다. 사라진 남편 로델을 찾겠다는 가난한 아내 매리에게 자비는 없었다. ‘유엔 ‘경제적·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은 노동자 가족의 관광이나 단기방문은 자유롭게 가능하도록 보장하도록 하고 있고, 한국도 가입한 이 협약에 가입했지만, 가난한 로델의 가족에게는 예외적으로 적용되었다. 매달 가족을 위해 필리핀으로 5만페소(약 110만8천원)를 보냈던 로델은 자신의 기숙사에 미화 1만200달러(약 161만7800원)와 딸에게 줄 장난감을 남겨두고 사라졌다. 로델은 우울한 날이 길어질수록 삶의 방향을 잃어버렸다.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가족이 그의 곁을 지킬 수는 없었다. 가난은 로델이 사라지기 전에도 그리고 그가 사라진 지금도 그의 영혼을 안식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한국은 1991년 산업연수제라는 현대판 노예 제도를 만들어 저임금으로 이주노동자를 고용하는 기형적인 제도를 도입하였다. 이때부터 산업연수생 신분으로 가난을 탈출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이주노동자들은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대우도 받지 못한 채 저임금과 강제 노동, 산업재해, 폭언과 폭행 등 온갖 인권 침해와 차별을 견디며 살아야했다. 산업연수생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보다 임금에서도 차별을 받았기에,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한 노동자 대다수는 자발적 혹은 제도가 강제한 비자발적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2003년 전체 36만명에 달하는 이주노동자 가운데 29만 명이 미등록 체류 상황이었다. 산업연수제도의 폐해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2004년 도입한 새로운 제도가 고용허가제였다. 고용허가제는 대한민국 정부와 이주노동자 떠나온 고국의 정부가 노동자의 귀국과 귀환을 책임지도록 하였고, 이주노동자도 노동법에 따라 '노동자'로 인정하였다. 인권, 노동권 침해 방지를 위해서는 외국인노동자전용보험의 도입(임금체불보증보험, 출국만기보험, 귀국보증보험, 상해보험)과 고용허가제를 운영하는 관할 부처인 고용노동부의 사업장 관리 감독 등이 제도화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이주노동자에게 한국에서의 삶은 고단하다. 여전히 그들은 자신을 고용한 사업장에서만 유효한 고용허가서를 받을 수 있고, 체류기간이 만료되면 돌아가야 한다. 가족결합은 허용되지 않고, 가족방문은 충분한 경제적 여유가 있음을 증명할 수 있을 때만 허용된다. 쇠고랑을 차지 않은 노예생활이 지속되는 것이다.

 

헤롯이 저지른 광란의 시간을 피해 이집트로 떠난 요셉과 마리아의 가족도 이주노동자였다. 이스라엘에서 낯선 땅으로 떠난 목수에게 이집트 땅은 가족과 정착하여 예수와 그의 동생들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예수가 그의 부모와 다시 예루살렘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이산자에게 너그러울 수 있었던 정주자들의 관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주노동자 200만 시대(2017년7월31일기준 206만3659명)의 한국은 2000년전 이집트보다 못한 차별과 냉대로 이산자들의 영혼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슈레스타와 로델은 한국경제의 토대를 받쳐주는 이주노동자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노동으로부터 소외된 채, 한국사회를 떠받치는 소모품의 하나로 전락했다. 그들의 인권과 노동은 그 어디에서도 정당하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산자에게 타향은 고향이다. 자신이 새롭게 적응한 사회를 쉽게 떠날 수 없다. 떠나온 고향은 돌아갈 곳이지만, 지금 여기서 떠나기는 쉽지 않다. 이주노동자는 마치 소모품처럼 쓰이지만, 다시 반품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들은 한국경제의 밑변을 떠받치는 노동자지만, 버릴 수 있는 생산수단은 아니다. 깨진 유리창문 하나가 질서를 무너뜨리듯, 불안한 영혼은 토대를 무너뜨린다. 그곳에 한국경제의 밑변이 뿌리내리고 있다. 이주노동자의 외로움은 불안을 가중시키고, 불안은 영혼을 파괴하여 한국경제의 토대를 불안하게 만들 것이다. 이주노동자는 한국사회의 풍요를 위한 수단이 아닌 공존해야할 이웃이다. 이제 우리 사회도 이주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 관용을 제도화해야할 시점이다.

 

기사출처:

고한솔 (2017. 8. 10.). “통장에 남은 320만원은 아내와 여동생에게 주세요” 한 네팔 노동자의 죽음. 한겨레신문.

이문영 (2017. 8. 20.). 그의 이주와, 노동과, 이산으로 지탱되는 ‘우리’. 한겨레신문.

 

< 8월의 그밖에 논의된 사안들 >

 

1. 장충기 사장의 휴대폰 속 ‘기레기’들의 문자와 그들의 소통방식

2. 원전 공론회 위원회

3. 15번째 천만 영화 '택시 운전사'

4. 달걀 살충제 성분 발견, 밀집 사육

5. 종교인 과세

6. 그 외 제주 여검사, BBC 대북방송, 동남아시아 저가여행 등을 논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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