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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주목하는 시선 2019'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 꼭 이렇게 해야 했나?>
이름 관리자 이메일 kncc@kncc.or.kr
작성일 2019-05-07 조회수 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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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CK 언론위원회가 선정한 20194월의 시선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 꼭 이렇게 해야 했나?”

 

기념은 넘치나 성찰은 부족

올해 2019년은 191931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만 100년이 되는 해이다. 촛불항쟁을 통해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31운동에서 촛불혁명으로라는 구호 아래 대대적인 100주년 기념행사를 벌였다. 정부는 대한민국 100을 맞아 자랑스런 국민, 정의로운 국가, 평화로운 한반도라는 비전 아래 지난 100년의 기억, 새로운 100년의 시작이라는 목표로 아래와 같은 3대 분야 12대 전략을 내세우고 대대적인 기념사업을 벌였다.

 

3대 분야 12대 전략

1. 독립운동의 기억기념

온 국민이 함께 하는 기념행사추진

애국선열들의 독립정신발굴선양

헌신을 기리기 위한 문화콘텐츠제작

역사적 의미를 담은 기억의 공간조성

2. 대한민국 100년의 발전성찰

민주화와 인권의 민주공화국 100년사고찰

분단전쟁을 넘어 산업화를 일군 발전사조명

대한민국 100년과 함께한 여성사 재해석

재외동포 성장 지원으로 ‘K-Network’ 확대

3. 국민과 함께 만드는 미래희망

행복과 번영의 미래 100년 전략모색

국민참여를 통한 미래 희망 심기추진

남과 북이 함께 만드는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조성

미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국제적 공감대확산

 

하나같이 좋은 말이고 필요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31일부터 411일까지 요란했던 한 달의 행사 기간을 보낸 뒤, 무언가 공허하고 허전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과연 우리는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을 꼭 이런 식으로 했어야 했던가? 사실 100주년 기념행사이니 좋은 일, 좋은 말이 전면에 부각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것은 이번 기념사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필자가 기념사업을 기획하는 입장이었어도 당연히 그리 되었을 것이다. 다만 좋은 일, 좋은 말을 전면에 내걸더라도 임시정부 100년이 우리에게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을 놓치지 말고, 우리가 너무 당연히 받아들이는 전제들을 되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요컨대 기념은 넘쳤으나 성찰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심경이다. 기념행사를 보도한 언론의 태도에서도 성찰과 미래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진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나?

현재 우리의 헌법은 19876월 항쟁 직후 개정된 것인데, 헌법전문에 임시정부의 법통계승을 명기하고 있다. 이 구절은 이회영 의원의 손자인 이종찬 의원이 강력히 주장하여 헌법에 명기되게 되었는데, 충분하고 세밀한 검토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헌법에 규정되었다. 임시정부의 법통 계승은 헌법에 명기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엄청난 규정력을 갖게 되지만, 사실 여러 가지 면에서 따져보아야 할 점이 많다.

첫째, 임시정부를 이끌어온 백범 김구 주석이 분단정부와 임시정부의 관계를 부인했다는 점에서 백범 사후 근 40년 만에 이루어진 이 규정은 남북협상에 적극 참여했던 임시정부 주류 인사들의 입장과는 상충된다는 점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둘째,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해방 전야의 독립운동 진영 내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대표적인 세력이지만, 유일한 세력도 아니고, 31운동 직후와 같은 대표성을 갖고 있지 못했다는 점이다. 즉 법통이라는 배타적일 뿐 아니라 봉건적이기까지 한 규정은 임시정부 밖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한 다양한 세력을 배제하게 된다.

셋째, 대한민국 정부가 과연 임시정부의 건국강령이나 건국 구상을 실질적으로 계승했는가 하는 점이다. 법통을 계승했다고 하려면, 인물과 정책을 다 계승하였어야 할 터인데, 인물의 계승은 그렇다 치더라도 정책만큼은 계승되어야 하는데, 대한민국이 과연 임시정부가 꿈꾼 나라였는가에 대해서는 겸허한 반성이 필요하다고 본다. 1948년의 제헌헌법은 그래도 임시정부의 건국구상을 상당한 정도로 반영했다. 그러나 전쟁과 학살과 헌정유린으로 제헌헌법은 곧 휴지조각이 되었고, 국가보안법이 헌법보다 훨씬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임시정부나 제헌헌법이 꿈꾼 평등한 세상은 오지 않았다.

 

과연 역사적으로 대한민국은 임시정부를 계승했는가? 1987년 헌법의 선언적 규정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다. 우리가 마주해야 할 불편한 진실은 따로 있다. 법률적으로 대한민국이 계승한 것은 미군정이고, 미군정은 조선총독부 법률체제를 이어받았다. 역사의 계승이라는 것은 단절된 역사의 복원도 포함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진실과는 거리가 있더라도 선언적으로 과거의 어느 시점과 현재를 연결 짓는 것이 꼭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선언만으로 될까? 임시정부를 포함한 그 어떤 독립운동 세력도 분단을 상정하고 독립운동을 벌이지 않았다. 전쟁을 거치며 고착화된 분단과 극우반공독재가 연속된 역사 속에서 임시정부를 비롯한 독립운동 세력은 대한민국의 주도세력이 될 수 없었고, 그들의 꿈은 이 땅에서 실현되지 못했다. 늦었지만 이들의 꿈을 변화된 현실에 맞추어 실현시키는 노력이 경주되지 않는 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규정은 현실에서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사문화된 항목이 될 것이다.

 

누가 임시정부를 부인했나?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으며 우리는 누가 임시정부를 부인했는가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암살>이 개봉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일제의 항복장면을 영상으로 지켜보던 임시정부의 젊은이들이 항복 조인 순간 집에 가자! 집에 가자!” 외치는 장면에서 울컥했다는 말을 하곤 했다. 그런데 정작 백범 등 임시정부 요인 1진이 귀국한 것은 815일에서 100일이 지난 1123일에서였다. 일제가 패망했어도 이 땅의 주인은 우리 민족이 아니라 미군정이었다. 미군정은 임시정부가 정부의 자격으로 환국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38도 이남의 조선 땅에는 미 군정부가 있을 뿐이고, 그 외에는 다른 정부가 존재할 수 없다는 미 군정장관 아놀드의 성명은 비단 인민공화국을 부인하는데 그치지 않았다. 미국과 미군정은 임시정부를 인정할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빠진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행사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행사와 관련하여 미국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꺼내는 것은 한 달 간 진행된 기념행사의 하이라이트로 임시정부 창건일인 411일 임시정부가 건립된 해인 1919년을 기념해 1919분에 열린 100주년 기념식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대통령 직속으로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조직하고 100주년 기념행사를 열성적으로 준비해 온 문재인 대통령은 정작 그 시간 트럼프의 호출을 받고 미국에 불려가 있었다. 한미관계는 대단히 중요하고, 한미정상회담이라는 게 미국대통령의 일정에 맞춰 진행될 수밖에 없겠지만, 한국의 국력이나 국격이 정상회담 날짜를 2-3일 정도 조정할 만큼도 못되는 것일까?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원활한 한미 공조를 조율하고 트럼프가 김정은을 달래기 위해 보내는 메시지를 전달받기 위한 한미정상회담이 꼭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행사 날 가져야 할 만큼 촌급을 다투는 절박한 문제였을까? 임시정부 요인들이 바라던 민족의 자주란 아직도 요원하구나 하는 비감을 떨칠 수 없다.

 

계승의 역사, 그 내용을 채우려면

안타깝게도 우리에게 해방은 곧 분단이었다. 분단으로 시작된 한국현대사에서 독립운동 세력은 자리를 잡지 못했다. 한국은 친일반민족 세력을 청산한 것이 아니라, 친일반민족 세력의 청산을 주장하던 양심세력이 친일세력에게 거꾸로 청산당하는 역청산의 역사를 걸어왔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 속에 힘들게 민주화의 길에 들어선 이후, 민주개혁진영에서 과거청산의 과제를 제기하는 것과는 별도로 군이나 경찰 등 국가기관에서 자기네의 역사를 항일운동과 결부지으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군의 뿌리를 광복군을 넘어 의병, 독립군에서 찾으려는 국방부의 국군 뿌리 찾기 운동’, 육군사관학교가 그 기원을 신흥무관학교에서 찾으려는 움직임, 경찰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경찰사를 적극 발굴하고, 독립운동가 중에서 해방 후 경찰에 입문한 사람들에 대한 적극적인 발굴 노력 등을 들 수 있다. 필자는 장기적으로 군이나 경찰의 역사가 이렇게 정리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나 염치가 있어야 한다. 군이나 경찰이 독립운동가 출신이 아니라 친일파, 일본군이나 만주군 출신들, 일제 경찰 출신들로 채워졌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군과 경찰은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주된 억압기구이자 민간인학살의 기본 기관이었고, 군사독재의 버팀목이었다. 새로운 역사를 쓰려면 자신의 몸부터 정갈히 해야 하지 않을까? 중국 땅에서 중국정부의 돈으로 먹고 자고 입고 훈련하면서 만든 광복군도 우여곡절 끝에 작전지휘권을 찾아왔다. 작전지휘권도 없는 것이 노예군대이지 어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국군이 될 수 있겠는가라는 것이 임시정부 어른들의 피맺힌 절규였다. 작전지휘권을 찾아올 생각도 안 하고, 작전지휘권 찾자는 주장이 종북좌빨로 몰리는 현실에서 임시정부 법통계승을 외치고 100주년 기념행사를 아무리 성대히 거행하면 무엇 하나?

 

이제 100년은 끝났고, 새로운 100년이 시작이다. 화려한 기념이 아니라 뼈아픈 성찰이 필요한 때다. 우리는 분단 상황 속에서 열심히 노력하고 투쟁하며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달성하는 등 이룬 것도 참으로 많지만, 이루지 못한 것 또한 엄청나게 많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독립운동가들이 꿈꾸었던 나라는 분단된 나라도 아니었고, 흙수저들이 비명을 지르는 헬조선도 아니었다.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려면 우리가 무엇을 이루었고, 무엇을 이루지 못했는가에 대한 철저한 점검은 꼭 했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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