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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주목하는 시선) 2019' <반민특위 폄훼 발언과 친일파 미 청산문제> 선정
이름 관리자 이메일 kncc@kncc.or.kr
작성일 2019-04-01 조회수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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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CK 언론위원회가 선정한 20193월의 시선

 

반민특위 폄훼 발언과 친일파 미청산 문제

 

친일파 문제는 한국근현대사의 치명적 환부이자 맹점 - 나경원 의원의 반민특위, 토착왜구, 반문특위, 국어실력....’을 보며

 

 

올해는 기념할 날이 많은 해다. 50주년, 60주년, 100주년 등 10진법에 떨어지는 해를 기리는 것은 미디어의 오랜 관행이다. 기실 이를 계기로 해당되는 역사적인 사실을 돌아보게 되고, 이는 우리 사회의 공론장에 일정한 명분과 필요를 제공한다. 그런 맥락에서 톺아보자면 2019년은 당근 3.1운동 100주년의 해이고, 상해 임시정부 100주년(4.11)의 해다. 일제의 제암리 학살 100주년(4.15)에 해당하는가 하면 신흥무관학교 개교 100주년일(5.3)도 있다.

일련의 여러 기념일 중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으로 반민특위 와해 70주년의 날(6.6)도 있다. 이 날은 곧 백범 서거 70주기(6.26)로 이어진다. 미완의 친일파 청산을 상징하는 반민특위 해체는 이승만 정권하 19496월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이후 한반도는 급속히 전쟁과 분단으로 치달았다. 본 언론위원회에서도 6월경에 가서는 한번쯤 다루어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때 이른 3월에 반민특위가 초미의 빅 이슈로 소환됐다. 이미 알다시피 한국 사회에 이런 뜨거운 국면을 조성한 이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이하 나대표 또는 나의원). 그는 314일 자유한국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독립유공자들의 친일행위가 확인되면 서훈을 취소하겠다는 국가보훈처의 업무보고를 비판했다이어서 본인들 마음에 안 드는 역사적 인물에 대해서는 친일이라는 올가미 씌우는 것 아닌가 한다고 운을 뗀 후, 반민특위를 거론하는 문제발언을 했다.

해방 후에 반민특위로 인해서 국민이 무척 분열했던 것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또다시 이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전쟁이 벌어지지 않도록이라고 말했다방송사의 취재카메라에 똑똑히 수록된 그대로, 그는 해방직후의 분열과 혼란이 반민특위로 인한 것이라고 표현했다. 나중에 다시 말하겠지만 여기서 나대표의 발언을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제시하는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나의원의 난데없는 반민특위 발언으로 정국은 소용돌이에 빠졌다. 곧 언론계와 학계로 비화했다. 이미 이틀 전인 312일 국회에서 이루어진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김정은 수석대변인발언으로 국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던 나대표가, 이번엔 반민특위로 인한 국민 분열이라는 궤변을 던진 것이다. 이건 뭐 돌직구도 아니고 연쇄폭투라고 해도 좋겠다. 막말폭투에 맛들인 것인가.

반민특위는 1948년 제헌국회가 반민족행위처벌법에 따라 일제 강점기 친일파의 반민족행위를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 설치한 특별위원회다. 제헌국회에서는 194897일 국권강탈에 적극 협력한 자, 일제치하의 독립운동가나 그 가족을 악의로 살상·박해한 자 등을 처벌하는 목적으로 반민족행위처벌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친일파와 결탁한 이승만 정부의 방해와 친일 경찰의 준동으로 활동을 시작한지 8개월여 만에 와해됐다.

19496 6, 이승만 정권하 친일경찰에 의해 자행된 반민특위 습격은 한국 사회가 부패한 반공세력에 의해 점거되는 분기점이었다. 특위는 와해되고 일제하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단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우리 사회는 친일 청산에 실패하였고, 나아가 일본제국주의에 부역, 매국한 자들이 한국의 지배 세력이 되었다. 이른바 잘못 끼어진 첫 단추로 인한 역사적 퇴행과 허무주의는 우리 현대사의 지울 수 없는 상흔(傷痕)이다. 나대표가 반민특위를 반대하거나 부정한 적은 없다고 해명 했으나 근본적으로 자신의 발언에 대한 성찰 없이 반민특위 활동을 국민 분열이라고 언급한 것은 심대한 역사 왜곡이다.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진행된 논의에서 반민특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콘센서스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우리 힘으로 쟁취한 광복은 아니었어도 정부 수립 국면에서 악질 친일인사에 대한 처단은 새로운 출발을 위한 최소한의 통과의례였다. 해방 직후 미군정의 비호에 이어, 이승만 정권에 들어서 반민특위의 좌절로 이 같은 기회는 무산되었다. 하지만 보수세력도 적어도 공론장에서는 반민특위를 폄훼하지는 않았다. 심지어 반민특위 당시 방응모 사장 휘하의 조선일보에서도 자숙하라 친일군상, 반족배(叛族輩)에 제1과 같이 보도한 바 있다(한홍구, 유튜브 조선일보도 지지했던 반민특위 활동’, 나경원을 위한 반민특위 특강 01).

 

나의원의 이 같은 언동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물론,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각 정당이 일제히 비판 성명을 냈다. 홍성문 민주평화당 대변인은 “5.18 망언으로 국민들을 분노하게 한 소속의원들에 대한 징계는 눈 가리고 아웅 하더니 반민특위 친일청산 활동에 대해서 국민들을 분열시켰다고 평가하는 한국당의 정체성은 도대체 무엇인가라고 힐난했다. 특히 김동균 정의당 부대변인의 반민특위 때문이 아니라 반민특위가 좌초됐기 때문에 국민이 분열됐던 것이라는 지적은 정곡을 찔렀다고 할 수 있다.

이 발언은 14일 검색어 순위에도 오르며 논란을 낳았으나 15일자 일부 신문은 침묵했다. ··동을 필두로 국민일보 세계일보 등은 나 원내대표의 발언 자체도 소개하지 않았다(미디어오늘 3.15). 그러자 한국PD연합회가 나의원의 반민특위 폄훼 발언을 비판했다. PD연합회는 그 동안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인물현대사>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역사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해 온 PD들의 성과에 찬물을 끼얹는 망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유력 정치인이 왜곡된 역사관을 공공연히 설파하여 국민을 분열시키는 것은 이 땅의 비극이라고 언명했다.

이어서 한국역사연구회, 역사문제연구소, 민족문제연구소, 한국고대사학회 등 국내 29개 역사학회도 나섰다. 이들은 319역사의 진실을 부정하는 정치인에 대한 역사학계의 규탄 성명에서 “5·18과 반민특위에 대한 망언은 민주주의 부정이라며 역사학자들은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여 정쟁의 도구로 삼고자 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행태에 깊은 우려를 표명한다고 비판했다.

나의원의 반민특위 폄훼발언으로 대표되는 자유한국당 진영의 이와 같은 언동이 계속 자행되자 시중에는 나베, ‘토착왜구니 하는 성토가 이어졌다. 천정환 교수는 “1949년 당시 반민특위에 대한 비난과 공격에 나섰던 극우 친일파의 책략은 나원내대표의 그것과 흡사하다. 그들도 반민특위가 민족을 분열시키는 좌파라는 선동술을 폈다.”고 진단했다. 또한 누리꾼의 토착왜구는 흥미롭고 함축적인 조어다. 이 말은 외세와 분단상황에 기생하는 세력이 약탈적 부를 누리면서 반민주·반인권·반평화의 행태를 멈추지 않는 것을 표상하는 데 적합한 면이 있다.”고 정리했다(경향신문).

 

이후 시중에는 토착왜구토왜(土倭)’에서 비롯되었다는 연구가들의 주석이 연이어 제기되었다. 역사학자 전우용씨는 1910년 대한매일신보에 실린 토왜천지(土倭天地)’라는 글을 제시했다. 그는 토왜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병들게 하는 인종(人種)’으로 규정하고, 일본의 앞잡이 노릇하는 고위 관료층, 일본의 침략 행위와 내정 간섭을 지지한 정치인과 언론인 등 4가지로 분류한 글을 SNS에서 소개했다. 뉴스톱의 김동문 팩트체커는 토왜1908년에 대한매일신보 국한문 혼용판에 친일단체인 일진회를 비판하는 대목에서 이미 등장하고 있음을 고증하기도 했다.

322일에는 101세의 독립유공자 어르신이 국회 정론관에서 나의원을 비판했다.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임우철 애국지사가 노구를 이끌고 나타난 것이다. 그는 반민특위의 숭고한 활동을 역사 왜곡하고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더불어 국민들에게 무한한 실망감을 안겨준 나경원은 의원직을 사퇴하고 역사와 국민 앞에 사과할 것을 독립운동자 후손들의 이름으로 요구한다고 일갈했다.

정치인이 자신의 어떤 발언으로 인해 여론이 악화되면 대개의 정치인들은 발언의 진의가 왜곡되었다며 유감을 표시한다. 그리고 한발 물러서면서 면피용으로라도 개전의 정을 보인다. 이것이 저간의 관행이다. 물론 여기에도 진정성 여부가 중요하다. 그런데 나의원이 누구인가. 일찍이 2012년 대선 BBK 국면에서 주어가 없다는 발언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정표를 세운 바 있다. 이번에 그는 또 다시 세인의 상식을 뒤엎었다.

그러자 나의원은 자신이 비판한 것은 반민특위가 아닌 반문특위였다고 말하기에 이른다. 황당무계하고 괴상망측하기 이를 데 없다. “(자신의 발언으로) 궁지에 몰리자 뒤늦게 내놓은 해명이라는 게 가관이다. 나원내대표는 귀를 의심케 하는 해괴한 해명을 내놓았다. (...) 궤변으로 발뺌하려는 수작이다. ‘반민특위 발언으로 드러난 극우적 역사인식도 경악스럽지만, ‘으로 바꾸는 말장난으로 물타기를 하려는 천박한 발상도 목불인견이다.”(경향신문 사설). 한마디로 상상하는 이상을 보여준다.

 

나의원의 어록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앞서 314반민특위에 대한 그의 발언 기록에서 알 수 있듯 반문특위는 근거 없고 뜬금없다. 유사 이래 반문특위가 언제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언론의 지적이 빈발하자, 그는 다시 25일 기자간담회에서 반민특위라고 말한 걸 부정한 게 아니다, 도리어 국어 실력들이 왜 이렇게 없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정녕 이슈로 이슈를 덮고, 논란으로 논란을 덮으려는 것인가? 이쯤 되면 그의 언행은 고의적인 도발이 아닌가 한다. ‘반민특위, 반문특위, 국어실력...’ 등 나의원이 입을 열 때마다 정치권, 언론, 학계, 시민사회가 들끓었다. 일련의 발언에 사계의 리액션이 어떻게 전개될지 뻔히 아는 나의원의 발호는 결과적으로 그에게 정국과 논의의 주도권을 안겨준 셈이 되었다. 이 점은 정치권은 물론, 언론, 학계, 시민사회가 반성할 점이 있다. 알고서도 당하는 꼴이라고 할까.

나의원이 자행한 분열적인 일련의 언동에서 우리 사회가 얻는 것은 정치혐오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레이 코프 식으로 말하자면 나의원이 매설한 프레임의 지뢰를 밟은 것이다. 그것이 소위 관종인지 노이즈 마케팅인지 알 수 없으나 이것이 그의 의도라면 성공했다. 나아가 이는 한국사회가 1949년 반민특위 와해 당시 형성된 구도와 지형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음을 함의한다. 우리 사회는 70년간 정체하고 퇴행한 것이다. 이번 사태는 정치인의 언동에 대증적(對症的)으로 반응하며 곧장 정쟁으로 비화하는 우리 사회의 담론장을 경계해야 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한편 1949년 당시 반민특위 청사는 지금의 을지로 입구 국민은행 명동지점에 소재하고 있었다. 반민특위 와해 50주년의 해인 19999월 민족문제연구소 회원과 시민들의 모금으로 이 자리에 반민특위 표석을 설치했다. 그러나 건물주의 반대로 입구에 서지 못하고 측면에 있다가 그나마 2014년경에는 지하주차장 입구 궁색한 자리로까지 옮겨졌었다. 최근 반민특위가 화제라 찾아가 보았더니 건물은 철거중이고 표석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간 것일까. 공사 와중에 설마 표석도 흔적 없이 철거된 것인가? 다행히 그것은 아니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에 따르면 현재 표석은 민족문제연구소(식민지역사박물관)에 보관 중이라고 한다(전시 중인 것은 아니다). 재건축 완료 후에는 건물주와 협의하여 원 위치에 설치할 것이라고 한다. 이 건물은 센터포인트 명동 빌딩으로 재건축된다. 새 건물에서는 좀더 떳떳한위치에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인지, 이는 이번 20193반민특위 폄훼사태가 공론장에서 어떻게 자리매김 되느냐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친일파 문제는 여전히 한국근현대사의 치명적 환부이자 맹점이다. ‘못 다한 반민특위가 역사의 법정에서 계속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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