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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차 연구발표회 : 한국 개신교의 기원은 언제인가? - 전래인가, 수용인가?
이름 관리자 이메일 test@test.com
작성일 2012-03-26 조회수 2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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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발전연구원은 지난 22일, 기독교회관 2층 에이레네홀에서 <한국 개신교의 기원을 언제로 잡을 것인가 - 전래인가? 수용인가?>를 주제로 제6차 연구발표회를 열었다.
 
 
이날 발표회는 임희국 교수(교회와역사분과위원장, 장신대학교) '한국교회 역사 100선에 대해'를 주제로 기조발제를 맡았고, 연규홍 교수(한신대학교), 이종전 교수(대한신학대학원대학교)가 각각 '한국 개신교는 수용이다', '한국 개신교는 전래이다'를 주제로 발제했으며, 김명구 교수(한국교회사학연궈원 상임연구원)가 논찬을 맡아 진행했다.
 
 
연규홍 교수는 한국의 개신교를 수용으로 보고, 한국 근대사의 사회, 문화, 경제적 상황에서 민중의 요구가 있었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라 주장했다. 1885년 선교사들이 기독교 복음을 전래하기 전에, 민중의 해방 열망과 역사 변혁 의지를 구체화한 갑오농민전쟁 그리고 그 결과의 연장선상에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관서지역(오늘의 행정구역으로 평안남북도, 황해도)의 민중들이 만주 땅에서 새로운 삶의 가치와 역사 이상을 추구하던 사람들에 의해 1876년 수용되었으며 이응한, 백홍준, 이성하, 김진기 등 4명의 한국 청년들은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John Ross)와 맥킨타이어(John MacItyre)에 의해 세례를 받은 것을 기점으로 보았다. 이후에 김청송 전도로 자발적 신앙공동체가 서간도에 한인촌(Corean Valley) 교회를 가능케 했고, 서상륜에 의해 평안도 의주와 황해도 송찬에서 수많은 개종자들이 생겼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일부 개화파 인사인 일본 수신사 박영효를 비롯해 김옥균, 유길준에 의해 기독교의 도입으로 나를 부하게 하고, 민족을 강하게 하고자 하는 민족적 관심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초기 선교사들은 제도적 교회를 세우고, 교육과 의료사업을 통해 근대화를 지향하는 조정과 일부 개화파 지식인들의 요구에 부응하는 계몽과 사회 개선을 이룩하는 일을 감당했다고 말했다.
 
 
두 번째 발제자인 대한신학대학원 대학교 이종전 교수는 “한국의 기독교는 전래이다”란 제목의 발제에서, ‘전래와 수용’의 문제는 사관의 문제이고, 선교사관과 민족사관의 두 흐름이 1960년 대 이후 한국교회사연구에 있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이것은 역사해석의 접근 원리임을 먼저 언급했다. 그러면서 ‘전래’를 중심으로 ‘수용’을 통한 교회형성과 발전을 살펴야만 한국교회의 실체를 성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즉, 수용이전에 전래라는 것이고, 수용자에 의한 선택이 있을지라도 복음의 내용은 전달자에 의한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기에 전래를 전제로 수용하는 과정에서의 독자성과 한국교회가 신앙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요인들에 대해 참고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두 가지 중 어느 방법을 절대시하면 상대적 소외와 그로 인한 왜곡이 동반되는 것이 필연이라면서 우려를 나타내기도 했다. 역사란 현재까지의 대답일 뿐, 다른 자료가 발굴되고 증거가 확보되면 다른 의미로 해석하고 서술해야 한다는 원칙을 언급하면서, 한국개신교의 시점을 언제를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1885년 4월을 시점으로 하는데, 이때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입국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점을 정하는 것은 ‘전래의 역사’, 또는 ‘접촉사’, ‘준비 과정’으로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이 교수는 교회사연구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소외시킨다면, 성경해석은 물론 참된 교회사를 기술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두 개의 발제에 대한 논찬으로 한국교회사연구원 김명구 상임연구원은 ‘한국 개신교의 수용론’에 대해서는 '민족'에 대한 개념을 비롯한 민중에 대한 언급의 모호성을 지적했고, ‘개신교의 전래론’에 대해서는 한국교회의 시작을 ‘시점’으로 좁힐 것이 아니라 ‘시기’로 넓혀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즉, 한국교회의 형성기는 로스와 맥캔타이어로부터 복음을 전래받은 만주의 보부상이 모티브가 되고, 만주의 소래교회를 거치고, 재한 선교사(언더우드, 알랜 등)를 통해 교파교회로 발전하는 전 과정을 한국교회의 기원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본 연구원 이양호 연구위원장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 최근 역사학자들 간에는 ‘시작점’ 보다는 ‘시기’로 보는 관점이 주요 흐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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