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주요사업 > 국제위원회
 
제목
팔-e뉴스 8호) 팔레스타인 청년운동가 바나(Bana)와의 인터뷰 1부
이름 관리자 이메일 kncc@kncc.or.kr
작성일 2018-11-02 조회수 279
파일첨부
SNS

팔레스타인 청년운동가 바나(Bana)와의 인터뷰  1부





인터뷰 정리: 나가오 유키 목사

 

“SNS를 보면 '어제 같이 있던 친구가 잡혀갔다. 빨리 풀려나면 좋겠다'라는 내용이나 '친구가 맞아서 수술 중이다'라는 같은 글이 넘쳐납니다. 이것은 완전히 비인간적인 상황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 끝나지 않고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나 아부 줄루프(Bana Abu Zuluf)는 팔레스타인 베이트 사후르(Beit Sahur) 출신으로 현재 성공회대 아시아비정부기구학과(MAINS)에서 유학 중인 팔레스타인 운동가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바나와 인터뷰를 진행하고 팔레스타인 젊은이의 상황과 한국과 팔레스타인의 관계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Q1. 어렸을 때는 어떻게 지냈나요?

 

저는 팔레스타인에서 매우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회는 개인주의보다는 공동체 정신이 강해 이웃끼리 모두 알고 자주 모이며 친구도 많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제 삶은 평범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점령 속에 살면서 트라우마가 생겼습니다. 특히 이동의 자유가 없다는 사실이 힘들었으며 항상 공포 속에 지냈습니다. 친구가 이스라엘군에 잡히거나, 총에 맞아 죽는 것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군용차가 언제 우리의 토지를 빼앗으러 올지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우리의 의식은 이런 상황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총과 폭탄 소리가 들리는 환경에서 생활하고 있고, 그것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생활이 “평범”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저는 미국으로 유학을 갔을 때 깨달았습니다. 물론 미국에서 흑인과 이민들이 갖고 있는 공포도 있지만...

 

물과 전기가 끊어질 수 있다는 것은 제가 살면서 갖게 된 트라우마 중 하나입니다. 보통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물과 전기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은 특권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친구 중에는 난민 캠프에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곳을 찾을 때마다, 저에게도 트라우마가 생깁니다. 그들은 일반적인 집에서는 살지 못하고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토지가 수탈되었기 때문에 자기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이들은 아이일 수가 없습니다. 정신적으로 지나치게 빨리 성숙해집니다. 강인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트라우마와 공포를 극복해야 해서 어린 시절을 제대로 보낼 수 없습니다. 제 어린 시절도 "어린 시절"이라고 부를 수가 없습니다.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 버렸습니다. 어린 시절을 빼앗겼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팔레스타인 사회 자체가 행복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우리 정체성이 공포와 억압, 점령으로 구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처럼 자유롭게 이동하지 못하고,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르는 불안함 속에서 살아야 하고, 자기 밭에 올리브를 따러 갈 수조차 없는 상황이 있습니다. 저는 그런 이야기 하나 하나를 기억하려고 합니다.

 

2000년 제2차 인티파다가 시작된 다음날, 이스라엘 군용차와 불도저가 길을 지나가던 모습을 잊지 못합니다. 그 총구는 저와 아이들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왜 우리가 그렇게 다뤄져야 하는지, 큰 의문을 느꼈습니다. 내가 뭔가 잘못된 걸까? 열등감 같은 것까지 느꼈습니다. 이런 일들이 제 트라우마가 되고 있습니다.

 

Q2. 팔레스타인 활동가인 아버지로부터 어떤 특별한 교육을 받았나요?

 

아버지는 팔레스타인 권리 옹호를 위한 프로그램과 팔레스타인에 대해 모르는 외국인들에게 팔레스타인 이슈들을 알려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팔레스타인에 와서 상황을 알고, 활동에 참여하고 연대해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올리브 나무를 심거나 올리브를 수확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실제로 팔레스타인의 농지를 지키는 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저도 거기에 참여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프로그램을 통해 팔레스타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궁금해졌고,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경험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식민주의 구조를 이해할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이 활동을 통해 우리가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우리가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목소리가 있고 우리는 연대할 수 있기 때문에, 불행한 역사 속에 머물러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모든 억압에 대항해서 서로 손을 잡고 일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연대하고, 단순한 공감만이 아니라 팔레스타인에 대한 사랑으로 우리에게 와주는 것에 대해 저는 큰 감동을 받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팔레스타인은 아주 열악한 상황 속에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모릅니다. 우리는 항상 목소리를 빼앗기고 있고, 활동도 항상 억압되어 있습니다. 제 아버지는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고, 저에게도 자극을 줍니다.

 

아버지가 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은 본국에 돌아간 후에도 계속 활동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에게 팔레스타인 상황에 대해 전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BDS(Boycott, Divestment, and Sanctions. 이스라엘 지원 기업 제품 불매 운동) 캠페인은 매우 기본적이고 중요한 활동 중 하나로 전 세계에 퍼지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BDS에 참여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통해 이스라엘 점령에 가담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제 아버지가 하는 일은 이러한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에 참여하고 있어 어떤 일에는 가담하고 싶지 않은지 아니면 상황을 그대로 따르는지, 그것을 선택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정보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지식과 깨달음을 주는 것이 아버지가 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팔레스타인의 갈등을 곧 바꿀 수는 없지만 아주 강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버지뿐만 아니라 어머니의 영향도 컸습니다. 어머니도 활동가인데 어머니는 여러 문제에 매우 관심이 많은 사람입니다. 어머니의 오빠인 제 삼촌은 1992년에 이스라엘 병사에게 살해 당했습니다. 삼촌이 어떻게 죽었는지는 할머니께 들었습니다. 제 가족은 삼촌과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에 삼촌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열정적인 활동가였던 삼촌은 항상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었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삼촌을 지도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도 삼촌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삼촌이 억압에 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전글 팔-e뉴스 9호) 분리장벽과 검문소: 차별과 억압의 수단
다음글 팔-e뉴스 8호) 주택 파괴, 계속되는 생존 위협과 차별
      
 
[03129] 서울시 종로구 대학로 19 기독교회관 706호  l  대표전화: 02-742-8981  l  팩스: 02-744-6189  l  이메일: kncc@kncc.or.kr
Copyright(c)2012 by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in Korea.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