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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과 함께 드리는 공동기도문-앙골라, 모잠비크
이름 교회협 이메일
작성일 2010-06-04 조회수 4306
파일첨부 angola, mozambique.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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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이 함께 드리는 공동기도문, 『하나님 손에』(In God"s Hands)
2010년 6월 둘째 주일

앙골라, 모잠비크 편

이 나라는 전쟁으로 모든 길들이 사라졌다. 길 위에는 하이에나들만 어슬렁거리고 재와 먼지 냄새만 진동하고 있다. 시골마을마다 이전에 결코 볼 수 없었던 슬픔과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있다. 그들의 피부는 더럽다. 너무나 더러워서 그들에게서 밝은 모습이나 오랫동안 잊혀졌던 용기를 찾아볼 길이 없다. 이곳에서 하늘의 뜻은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모든 사람들은 죽음이 주는 교훈에 순응한 채 밑바닥에서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졌다.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길은 누구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다. 그 거리를 유지하면서 지난 몇 세기들보다 더욱 굴종적인 모습으로 살아야 한다. 불타버린 자동차 잔해를 따라 약탈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사방이 열대의 대초원으로 둘러싸인 땅에서 오직 바오밥나무 만이 이 세계의 꽃들이 떨어지는 것을 묵상하고 있다.

한 노인과 한 소년이 길을 따라 걷고 있다. 그들은 마치 걷기 위하여 태어난 사람들처럼 흔들리며 걷고 있다. 그들은 출발지도, 목적지도 없이, 특별히 여행을 연기해야 할 이유도 없이 가고 있다. 그들은 전쟁을 피해 걷고 있다. 그러나 그 전쟁은 이미 온 나라를 휩쓸고 있다. 그들은, 그 무엇보다, 평화로운 땅에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여행하고 있다. 그들은 신발도 없이 길과 같은 색의 옷을 입고 있다. 노인의 이름은 투아히르(Tuahir)이다. 그는 몸의 모든 양분이 빠져나간 것처럼 깡말랐다. 젊은이의 이름은 무이딩가(Muidinga)이다. 그는 수용소에서 쫓겨나 흩어질 때부터 줄곧 노인의 앞에서 걷고 있다. 그가 조금 절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쪽발이 다른 발보다 조금 늦게 끌리며 가고 있다. 최근에 앓았던 병 때문에 그는 죽음에 한발자국 더 가까이 갔었다. 노인은 어린 시절부터 소년에게 모든 것을 가르쳤다. 걷는 법, 말하는 법, 그리고 생각하는 법을. 무이딩가는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의 두 번째 유년기는 생존의 갈급함으로 인하여 더욱 빠르게 지나고 있다. 처음 여행을 시작했을 때, 그는 노래도 하고, 꿈 이야기로 기운을 북돋아주기도 하였다. 그러나 점차 고독과 친해지면서 그는 더 이상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 두 여행자가 함께 길을 가고 있다. 그들은 절망이 주는 무력감과 지친 몸으로 여행하고 있다. <미아 카우토(Mia Couto), 모잠비크>

앙골라 공화국(Republic of Angola)

통계
인구 : 1천 5백 50만 명
정부형태 : 다당제 공화제
언어 : 포르투갈어
문자해독률 : 남자 83%, 여자 54%
종교 : 로마 가톨릭 68%, 개신교 20%, 부족종교 12%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앙골라 복음주의 침례교회(Evangelical Baptist Church of Angola), 앙골라 복음주의 회중교회(Evangelical Congregational Church of Angola), 앙골라 복음주의 오순절 선교회(Evangelical Pentecostal Mission of Angola), 앙골라 복음주의 개혁교회(Evangelical Reformed Church of Angola)

역사
앙골라는 남아프리카의 서쪽 해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쪽으로 콩고 공화국, 동쪽으로 잠비아, 남쪽으로 나미비아와 접하고 있다. 대서양 해안 북쪽에 위치한 카빈다(Cabinda) 주는 콩고공화국에 둘러싸여 있는 앙골라의 영토이다. 앙골라는 많은 부족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는 나라이다.

1483년, 스페인 탐험가 디에고 카오(Diego Cao)가 지금의 앙골라 해안에 도착하였다. 그는 대서양과 인도양을 연결하는 통로를 개척하려는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 1504년, 푸르투갈 상인들이 개인적으로 방문하여 므분두(Mbundu)와 교역을 하며 루안다(Luanda) 평원에서 평화롭게 살며 큰 번영을 누렸다. 그들은 후에 유럽인들에 의해 쫓겨났다. 1520년, 포르투갈 왕의 명령을 받은 선교사가 방문하여 원주민들에게 선교하였다. 앙골라 기독교의 초기 원주민 지도자 느골라(Ngola)는 원주민들을 대표하여 선택의 기로에 섰다. 즉, 개종하고 기독교인으로 삶든지 아니면 멀리 끌려가 노예로 살 것인지의 선택을 요구받았다. 1575년, 포르투갈인들은 루안다(현재의 앙골라 수도)에 항구를 건설하였고, 노예무역은 가장 수익이 높은 수출품목이 되었다. 3백만 명에 이르는 앙골라인들이 노예로 해외에 팔려갔는데, 대부분 브라질로 팔려갔다.

근대에 들어오면서, 포르투갈은 아프리카의 많은 지역을 식민지가 아닌 포르투갈령으로 지배했는데, 특별히 앙골라와 모잠비크에서 그랬다. 그러나 1910년 이후 포르투갈 본국이 대표적인 독재국가가 되면서 해외의 영토들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강력한 언론통제가 실시되고, 비밀경찰들이 도처에서 사람들을 감시하였으며, 정적들에 대한 가혹한 탄압이 뒤따랐다. 모든 앙골라 출신 흑인들은 강제노동에 끌려 나갔고, 지극히 소수의 흑인들이 교육을 받았다. 앙골라가 독립할 당시 전국에 걸쳐 단지 68명의 흑인만이 고등학교 교육을 받은 상태였다.

이차세계대전이 끝나자 포르투갈로부터의 독립을 요구하는 앙골라 국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작은 규모였지만 참혹한 부족 간 전쟁이 촉발되었다. 정권을 잡으려 했던 세 개의 중요한 부족 그룹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소련이나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앙골라 인민해방운동(Popular Movement for the Liberation of Angola, MPLA)은 쿠바와 다른 공산국가의 지원을 받는 마르크스주의 그룹이었다. 앙골라 민족해방전선(National Liberation Front, FNLA)은 복쪽에 본부를 둔 독립운동단체로 미국과 자이레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조나스 사빔비(Jonas Sabimbi)가 이끌던 앙골라 완전독립민족연맹(National Union for the Total Independence of Angola, UNITA)은 앙골라 남부에 본부를 두고 남아프리카의 지원을 받고 있었다. 포르투갈은 이들 독립운동 단체들과의 전투를 위하여 수백만 달러를 지불하였다. 1975년, 갑작스럽고 예기치 못한 상태에서 앙골라는 독립을 맞이했다. 포르투갈의 마지막 독재자 안토니오 살라자르(Antonio Salzar)가 군부 쿠데타로 갑작스럽게 축출되었다. 포르투갈은 거의 하룻밤 사이에 앙골라를 떠났다. 그들은 들고 갈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약탈하고, 정치적으로 진공상태(이 때문에 앙골라는 정치적으로 포르투갈이 행사하던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일어날 요소들로 가득했다)를 만들어놓고 앙골라를 떠났다. 이제 앙골라는 빈곤의 상처와 인구의 급속한 감소, 교육받지 못하고 정부의 구성과 통치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의 손에 남겨졌다.

오백 년 간의 식민지 통치가 끝난 후에 앙골라는 더욱 악화된 상황에 빠져들었다. 즉, 국제적인 지원을 받는 세 개의 독립운동 그룹 간에 길고 긴 내전이 시작된 것이다. 1975년부터 2000년 사이에 수십만 명이 난민이 되어 고향을 떠나야 했고, 백오십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냉전이 끝나면서 미국과 쿠바, 남아프리카가 앙골라에서 철수하였고, 평화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협정에 의해 1992년 최초의 자유선거가 실시되었다. 앙골라 인민해방운동(MPLA)이 선거에서 승리했으나, 앙골라 완전독립민족연맹(UNITA)의 조나스 사빔비는 선거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전투를 계속하였다. 1997년 연립정부가 구성되었으나 사빔비는 다시 참여를 거부하였다. 마침내 2002년 2월 사빔비가 정부군에게 살해당하고, 그 후 6주 후에 새로운 평화협정이 체결되면서 내전이 종식되었다.

거의 50년 동안 계속된 내전이 끝났지만, 앙골라인들의 평균기대수명은 39세에 지나지 않고, 그동안 두 세대가 한 번도 평화롭지 않았던 시기에 태어났다. 오늘날 오십 만에 달하는 인구가 영양실조와 기근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다. 앙골라 정부 통계에 따르면, 또 다른 오십만의 사람들이 문명세계와 단절된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4백만 명이 평화협정이 체결되기 전에 이웃한 나라들로 이주하였다. 다른 자료에 의하면, 앙골라 전역에 아직도 5백 만 개의 지뢰와 불발탄들이 묻혀있거나 떨어져 있다. 7만 명 이상이 지뢰로 인해 손이나 발을 잃었는데 이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비율이다. 더욱이 심각한 문제는 국민들의 건강과 의료품 부족현상이다. 국토의 기반시설들이 거의 남아있지 않고, 깨끗한 식수와 정확한 위생관리는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대부분의 앙골라 주민들이 예방 주사를 맞지 않기 때문에, 많은 국민들이 말라리아, 소아마비, 파상풍, 디프테리아, 백일해 등과 같이 예방과 치료가 가능한 질병이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후천성 면역결핍증(AIDS)도 서서히 확산되기 시작하여 성인 인구의 5퍼센트 이상이 감염되어 있다. 정확한 통계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앙골라는 풍부한 천연자원을 가지고 있다. 대규모 유전과 다이아몬드와 기타 광물들, 비옥한 토지와 풍부한 어종으로 가득한 수산 자원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원들을 마구 남용하였고, 부패가 만연하고 있다. 정치인들과 무장단체들은 이러한 자원에서 나오는 부를 서로 빼앗아 갔다.

1491년 포르투갈인들이 앙골라에 기독교를 전해주었다. 특히 왕 알폰소(Alfonso) 1세의 개종 이후 예수회 선교사들은 기독교를 널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알폰소 1세의 아들은 로마가톨릭교회 역사상 최초의 흑인 주교가 되었다. 그러나 노예무역이 번성하면서 알폰소 제국은 붕괴되었고, 기독교 역시 약화되었다. 그 후 수백 년 동안 예수회, 카푸친 수도회(Capuchines), 프랜시스회, 갈멜수도회, 성령교부의 모든 선교사들이 앙골라를 찾았다. 오늘날, 앙골라 기독교인의 사분의 삼 정도가 로마가톨릭 교인들이다. 개신교회는 19세기 말 도착한 영국, 미국, 캐나다 선교사들을 통해 전래되었다. 앙골라가 독립하기에 앞서 로마가톨릭교회는 협정을 통하여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성립하였다. 독립한 후에 앙골라 정부는 정교분리를 선언하였고, 교회가 세운 학교와 재산들을 모두 국유화하였다. 그 후 몇 년 동안 수많은 로마가톨릭교회와 개신교회 선교사들이 납치, 살해되거나 추방되었고, 많은 교회들은 공식적인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1980년대를 지나면서 교회에 대한 정부의 관용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여덟 개 교단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앙골라 기독교회 협의회(Council of Christian Churches in Angola)는 세계교회협의회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모잠비크 공화국 (Republic of Mozambique)

통계
인구 : 1천 9백 40만 명
정부형태 : 다당제 공화제
언어 : 포르투갈어
종교 : 기독교 42%, 이슬람 18%, 기타 부족종교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모잠비크 장로교회 (Presbyterian Church of Mozambique)

역사
모잠비크는 아프리카의 남동부 해안에 위치하고 있다. 모잠비크와 마다가스카르 사이에 인도양 해협이 있다. 서쪽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와 짐바브웨, 북쪽으로 잠비아, 말라위, 탄자니아가 자리하고 있다.

1498년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가 유럽인으로 처음 모잠비크에 도착하였다. 그는 당시 한창 번성하던 소팔라(Sofala) 항구(지금의 베이라 Beira)에 상륙하였다. 그곳은 모노마타파(Monomatapha, 짐바브웨 제국) 왕국에서 황금과 상아를 실은 배들이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페르시아와 아라비아, 인도로 떠나던 항구였다. 다 가마가 발견한 이 해안 들은 모두 수세기동안 이곳을 왕래해 온 아랍인들의 지배 아래 있었다. 모잠비크 역시 노예무역의 중요한 공급지가 되어, 처음에는 아랍권으로 노예를 수출하였고, 후에는 포르투갈로 바뀌었다.

16세기 도착한 포르투갈과 네덜란드는 공동으로 이 해안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가졌다. 두 나라는 금광을 차지하기 위하여 내륙지역을 정복하려고 노력했으나 원주민들의 저항과 질병으로 인하여 물러나야 했다. 포르투갈은 식민지 팽창정책을 사용하면서 앙골라의 경우와 같이 모잠비크를 해외에 있는 포르투갈 영토로 삼았다. 당시의 평균적인 식민지 정책에 비해도, 포르투갈의 모잠비크 통치는 가혹했다. 포르투갈은 모잠비크 점령 초기부터 자신들을 위해 일할 인원들만 유지하고 나머지 주민들을 미국에 노예로 파는 정책을 실시하여 주민 수를 줄였다. 19세기에 노예제가 폐지되었을 때 모잠비크의 변화는 크지 않았다. 당시 강제노동이란 모잠비크의 모든 흑인들이 6개월간 무보수로 노역에 동원되는 것을 가리켰다. 포르투갈이 광산개발과 농장을 위하여 유럽의 개인 회사들에게 영토사용권을 넘겨주기 시작하면서 이들 회사들이 강제노동의 상당부분을 흡수하였다.

1962년 모잠비크 해방전선(Front for the Liberation of Mozambique, FRELIMO)이 결성되면서 이렇게 불의한 구조에 대한 저항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들은 2년 후에 북부의 두 개 주에서 포르투갈 세력을 몰아냈다. 부족 간 전쟁이 일어나 치열해지면서 수천 명이 사망하였지만, 1975년 리스본(Lisbon) 정부를 전복하고 모잠비크는 독립을 선언하였다. 1975년 포르투갈인들은 가져갈 수 있는 모든 것을 약탈하여 떠날 때, 모잠비크 국민의 90퍼센트는 문맹이었다. 사십 명도 안 되는 의사들이 모잠비크 전역을 담당해야 했다. 경제는 붕괴되었고, 심각한 식량부족과 대부분의 국민들이 기아선상에서 고통을 당했다. 마르크스주의로 무장된 모잠비크 해방전선(FRELIMO)을 두려워한 인종분리정책 당시의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기본적인 시설들을 접수하였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 후 모잠비크 해방전선이 짐바브웨 자유의 전사들(Zimbabwean freedom fighters)을 지원하고 있다는 혐의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모잠비크인 광부들을 추방하였고, 자국 내 모든 외국환의 거래를 중지시켰다.

1983년, 모잠비크가 국가적으로 파산하면서 광범위한 기근이 발생하였다. 백인우월주의자 로데시아(Rhodesia)는 짐바브웨의 좌파 저항 세력을 진압하기 위한 게릴라 부대를 창설하고 기금을 지원하면서 모잠비크 해방전선(FRELIMO)에는 짐바브웨 저항세력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이들 반군들은 모잠비크 민족저항군(Mozambican National Resistance, RENAMO)라고 불렸는데, 이들은 유럽인들이 로데시아를 포기하자 남아프리카로 내려갔고, 모잠비크는 긴 내전에 들어갔다. 모잠비크 민족저항군(RENAMO)은 농촌지역에서 잔인한 작전을 펼쳐 수천 명의 모잠비크인들을 학살한 것으로 악명이 높은데, 특별히 교사, 의사, 지식인들, 기술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살해하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사모라 마셸(Samora Machel) 대통령에게 압력을 행사하여 모잠비크 민족저항군(RENAMO)에 대한 지원 중단을 약속하고, 아프리카 민족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 가입을 철회하는 약정서에 서명하였다. 그러나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협정을 성실하게 이행하지 않음으로 인해 내전이 계속되었다. 1989년, 마셸이 석연치 않은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고 나자 모잠비크 해방전선(FRELIMO)은 공식적으로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하였다. 1990년 새로운 헌법이 공포되고, 1992년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1994년과 2000년에 복수정당이 참여하는 선거가 실시되어 모잠비크 해방전선(FRELIMO)이 승리하였다. 그 후로 모잠비크는 정치경제적인 안정을 되찾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모잠비크도 주변의 많은 나라들처럼 막대한 대외채무와 극심한 빈곤으로 고통받고 있다. 인구의 대부분은 기초적인 생활수준에 못 미치거나 겨우 충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 2000년과 2001년의 우기에는 대홍수가 일어나 전국토가 초토화되고, 많은 농장들이 파괴되었으며, 2002년에는 홍수에 이은 극심한 가뭄이 찾아왔다. 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은 기아에 허덕이는 2백 6십만 명에게 식량을 제공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오랜 내전으로 인한 국토의 황폐화와 더불어 후천성 면역결핍증(AIDS)이 심각하게 확산되고 있다. 성인 인구 여덟 명 중 한 명이 이미 감염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이는 전체 인구는 14퍼센트에 달하는 수치이다.

모잠비크 인구의 절반은 아직도 전통적인 부족종교를 믿고 있다. 이슬람교는 10세기 경 아랍의 상인들에 의해 전래되었다. 1561년 쇼나족(Shona) 사람들을 개종시키기 위하여 노력하다가 순교한 예수회 신부가 이 지역에 찾아온 최초의 기독교 선교사였다. 그 후 19세기 말과 20세기 초까지 기독교는 이 지역에 발판을 놓지 못했다. 오늘날 기독교인은 인구의 40 퍼센트 정도이다. 헌법은 정교분리를 선언하고, 종교와 예배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모잠비크 기독교협의회(Christian Council of Mozambique)는 스물 네 개의 회원교회를 가지고 있는 에큐메니칼 조직이다.

함께 드리는 기도

감사기도 제목
● 앙골라와 모잠비크 국민들을 돕고 있는 국제연합, 특별히 세계식량계획과 다른 여러 단체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내전으로 인하여 큰 고통을 받은 이들 나라의 국민들에게 계속하여 희망을 전해주고 있는 교회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서로 적대적인 공동체들 간에 열린 대화를 계속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이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지뢰들이 발견되는 위험한 땅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농부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중보기도 제목
● 내전으로 황폐화된 이들 나라의 재건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집 없는 사람들로 남거나 난민으로 떠도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지뢰로 손이나 발을 잃은 수십만 명의 사람들과 앞으로 계속하여 이들을 돌보아야 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지금까지 한 번도 평화를 누리지 못한 아이들과 내전으로 육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상처입고 희생된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비와 햇볕이 균형 있게 내려 곡식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보다 풍족한 식량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가족들과 함께 충분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에이즈로 고통 받는 사람들과 가족들, 그들의 공동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대외 채무로 인한 노예 상태가 종식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함께 드리는 기도문

(1)
오, 하나님,
제 마음을 넓게 하셔서
주님의 크신 사랑을 담기에
충분한 마음이 되게 하옵소서.
제 마음을 멀리 펼치셔서
저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온 세계 있는 모든 사람들을
제 마음에 담을 수 있게 하옵소서.
제 마음을 펼쳐 주셔서
제 눈에 사랑할 수 없는 모든 사람들과
제 손으로 마주잡고 싶지 않은 모든 사람들을
담을 수 있게 하옵소서.
저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익명의 아프리카 기독교인의 기도>

(2)
모든 곳에 계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우주의 창조주이신 전능하신 아버지,
우리가 주님을 예배하며 주님을 축복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당신께서 외아들을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하늘로 오르시며
온 세상으로 나아가 복음을 전하라고
주님의 제자들에게 강하게 명하신
주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립니다.
그 복음이 이곳 앙골라에 전해졌습니다.
그 복음이 우리의 식구들에게
전해지고 받아들여져서
증오와 질투와 불의와 질병이 이 나라에서 물러가게 하옵소서.
앙골라에서 주님을 위하여 일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주옵소서.
오, 주님, 주님께서 부르신 사람들에게 보이사
복음을 전하고 선포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메디나 졸라 바야(Medina Zola Baya), 앙골라>

(3)
위대하신 하나님, 주님께 축복과 찬양을 드립니다.
주님은 이 세계를 창조하신 영원하신 아버지입니다.
우리가 죄인인 것을 알고
용서를 구하기 위하여
주님 앞으로 나옵니다.
주님, 사람들이 나인성의 과부의 아들을 데리고 왔을 때
주님은 그들에게 주님의 자비를 보여주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자비의 아버지이고,
우리의 모든 고통을 보고 전하는 분입니다.
고통당하는 이들과 함께 고통 받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습니다.
주님은 생명이십니다.
 주님을 믿는 모든 이들에게 생명을 주는 분입니다.
억압받는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돌보심을 전하겠습니다.
모든 대륙과 나라에 자비와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그러나, 특별히 앙골라와 모잠비크를 기억하여 주옵소서.
주님의 복을 기다리며 이 모든 것을 주님께 아룁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메디나 졸라 바야(Medina Zola Baya), 앙골라>

(4)
오, 하나님, 외적으로 너무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주님의 놀라우신 소망을 선물로 주시니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프리카의 이 지역에서
주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인 것을 믿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 속에 계시며,
위험한 시대에 구원하기를 더디 아니하시는
주님의 평화를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주님은 우주의 길과 목적을 알려주시며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조아오 마콘데크아(Joao Makondekwa), 앙골라 성서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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