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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이 함께 드리는 공동기도...레소토, 나미비아, 남아프리카, 스와질란드 편
이름 교회협 이메일
작성일 2010-05-31 조회수 4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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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진실이냐?” 이천년 전 예수님께서 빌라도 앞에 섰을 때 그는 물었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진실이란 나의 밖이나 나의 너머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지식들의 집합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진실은 무언가를 발견하려는 의지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진실은 새로운 것에 대한 개방성이며, 결과를 수용할 수 있는 의지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정의와 용서를 이야기할 때 진실의 개념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용서할 수 없고,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정의는 온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용서를 시작하는 자리에서만 진실을 받아들이는 개방성과, 최선과 최악에 대한 분별, 친구와 적에 대한 구별이 가능합니다. 적들을 최악과 최선으로 구분하는 것은 우리를 용서가 아닌 복수의 자리로 인도할 것입니다.  
<느존쿨루 느둔가네(Njonkulu Ndungane),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의 성공회 대주교>

레소토 왕국(Kingdom of Lesotho)

통계

인구 : 1백 70만 명
정부형태 : 입헌군주제
언어 : 세소토어(Sesotho), 영어.
문자해독률 : 남자 74%, 여자 90%
종교 : 기독교 90%, 소수 이슬람교, 부족종교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레소토 복음교회(Lesotho Evangelical Church)

역사
레소토(본래 발음은 “레-수-투”[Leh-soo-too]로 “산위의 왕국”이라는 뜻) 왕국은 남아프리카 공화국 영토에 완전히 둘러싸인 내륙국이지만 섬나라와 같이 완전히 독립되어 있다. 19세기 초부터 접경한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분리된 국가로 존재해왔고, 줄루(Zulu) 제국의 첫 번째 왕이었던 샤카(Shaka)가 주도하는 정복전쟁 기간에 많은 주민들이 인근 남아프리카 공화국 지역으로 흩어졌다. 1825년 소토(Sotho, 현재의 레소토) 영토에는 마을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샤카가 현재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영토인 크와줄루 나탈(KwaZulu Natal) 지역을 정복하고 지배하던 시기에 한 부족이나 마을이 통째로 사라지기도 하였다.

특별히 1824년 바소토(소토)족의 지도자였던 모셰셰(Moshoeshoe)와 그의 마을은 계속적으로 침략을 받았고 마을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모셰셰는 주민들을 이끌고 긴 여행길에 올라 마침내 타바 보시우(Thaba Bosiu, “밤의 산맥”)이라는 곳에 도착하였다. 그곳에서 고산지대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굶주림에 지친 모셰셰의 전사들은 줄루족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여 왕국을 건설하였다. 50년 동안 계속된 모셰셰의 통치기에 왕국의 영향력은 주변으로 서서히 확장되었다. 모셰셰는 여러 부족의 생존자들을 규합하여 보호를 약속하고, 자신의 도덕적 방식을 공동생활의 새로운 기준으로 수용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들은 새로운 왕국을 바수토란드(Basutholand)라고 불렀는데 대단히 아름다운 경관을 가지고 있었다. 높은 산 정상에는 때때로 눈이 덮혔고 깊은 계곡들 사이로 가파르고 험한 산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모셰셰의 영토와 권력을 탈취하려는 백인계 아프리카인들에게 바수토란드는 위협받기 시작하였다. 모셰셰는 왕국을 빼앗기는 대신 영국의 보호령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1868년 영국의 보호령을 들어간 그는 이년 후에 세상을 떠났다. 영국은 이곳을 직접 통치하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양도하는 것을 거부하였다. 독립적인 왕국으로 남아있던 바수토란드는 1966년 레소토라는 국명으로 독립하면서 헌법에 따라 의회를 구성하였는데, 절반은 성인 남자들의 투표로 선출되었고, 나머지 절반은 각 부족의 추장들이 선출한 왕에 의해 임명되었다. 모셰셰 이세(Moshoeshoe II)는 민주주의와 함께 백인들이 지배하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암묵적인 지지도 상실하였다. 추장 레아부아 조나탄(Leabua Jonathan)이 처음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그나마 명목상의 권력을 가지고 있던 왕을 즉각 축출하였다. 쿠데타를 통해 헌정을 정지시키고, 왕의 정치적 권력을 박탈함 것이다. 왕은 영국으로 망명하였다. 1970년부터 1993년 사이에 여러 차례에 걸친 쿠데타를 통해 친 남아프리카 공화국 경향의 군부 독재자들이 집권하였으나, 1993년 새로운 헌법에 기초한 민주적인 정부가 성립되었고, 망명 중이던 모셰셰 이세가 귀국하였으나 일 년 만에 교통사고로 사망하였고, 그의 아들 레트시에 이세(Letsie II)가 새로운 국왕이 되면서 레소토는 민주적인 입헌군주국이 되었다.

국내의 정치상황이 안정되어감에도 불구하고 레소토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이다. 오늘까지도 레소토의 도로사정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국토의 삼분의 이가 겨우 (수레는 다니지 못하고) 말만 다닐 수 있는 길로 연결되어 있다. 아직도 야자수 잎으로 만든 오두막집들이 산등성이마다 가득하다. 절반 이상의 국민들이 절대적인 빈곤에 시달리고 있다. 후천성 면역결핍증이 심각할 정도로 급속하게 전파되고 있다. 국제연합의 통계에 따르면 전 국민의 31퍼센트 이상이 감염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산물 재배가 감소하고 있으며, 2002년도의 가뭄으로 사분의 일 이상의 국민들이 크게 영향을 받았다.

1833년 프랑스인 개신교 선교사들이 도착하여 레소토 복음교회(Lesotho Evangelical Church)를 세웠다. 1862년에 프랑스인 로마 가톨릭 교회 선교사들이 찾아왔다. 오늘날 국민의 대다수가 기독교인이며, 그들 중 대부분은 로마 가톨릭 교회 교인들이다. 1964년 조직된 레소토 기독교 협의회(Christian Council of Lesotho)는 레소토의 에큐메니칼 조직으로 이 나라의 건강, 교육, 개발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나미비아 공화국 (Republic of Zimbabwe)

인종차별과 분리주의가 준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과
하나님의 백성으로 모두 조화롭게 사는 것이
얼마나 놀랍고 즐거운 일인지 모릅니다.
이제 주님의 성령이 모든 사람들의 가슴과 마음에 가득 찰 것입니다.
이제 아무도 인종이나 피부색으로 서로를 판단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정의와 존엄성에 따라 지배를 받을 것입니다.
전쟁이 끝나고 사람들은 모두 함께 이 나라를 재건할 것입니다.
피부색에 따라 다르게 설명하는 것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영원히 끝나지 않는 생명의 시작일 것입니다. 
<제파니아 카미타(Zephania Kameeta)

통계
인구 : 200만 명
정부형태 : 공화제
언어 : 영어
문자해독율 :  남성 87%, 여성 83%
종교 : 기독교 90% (개신교 62%, 가톨릭 17%), 부족종교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나미비아 복음주의 루터교회(Evangelical Lutheran Church in Namibia), 나미비아 공화국 복음주의 루터교회(Evangelical Lutheran Church in the Republic of Namibia),

역사
풍부한 광물과 어업 자원을 가진 길고 가늘게 생긴 나미비아는 북쪽으로 앙골라와 잠비아, 동쪽으로 보츠와나, 남쪽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접경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나라들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나미브(Namib) 사막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사막으로 알려져 있고, 해골 모양의 해안가를 따라 형성된 사구로 부딪혀오는 대서양의 푸르른 파도들이 특히 장관이다.

약 2만 5천 년 전 산족(San)이 이곳에 처음 찾아왔고, 다음으로 코이코이족(Khoikhoi)이 정착하였다. 그들의 뒤를 이어 15세기 경 오밤보족(Ovambo)과 헤레로족(Herero)이 찾아왔다. 1884년, 나미비아는 (토고와 카메룬에 이어) 독일의 남서아프리카에 복속되었다. 독일은 가장 잔혹한 식민주의 정책을 폈고, 나미비아인들은 독일의 통치 아래에서 그 어느 때보다  혹독한 식민지 생활을 겪어야 했다. 심각한 대량학살로 20년도 안 되는 기간에 헤레로족과 나마족의 인구는 12만 명에 달하던 인구수가 4만 명 이하로 줄었다. 주민들의 저항운동을 잔인하게 진압한 결과였다. 비위생적인 축산업과 토지의 남용으로 원주민들을 극심한 빈곤 상태로 추락하게 하였고, 특별히 산족의 몰락과 남쪽으로의 대량 이주를 가져왔다.

일차세계대전 기간 중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군대가 나미비아에 들어왔고, 1920년 나미비아는 독일의 식민지에서 풀려나 영국에 위임되었다. 영국은 즉각적으로 나미비아를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넘겨주었으나 한 나라가 되는 것은 거부하였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나미비아를 북부의 오밤보스(Ovambos) 흑인자치구로 분리하여 실질적으로 봉쇄하고, 비참한 주거환경과 높은 세금을 부과하고 “원주민”들의 토지를 몰수하여 그들이 남아프리카로 이주하도록 강요하였다. 자기 땅에서 쫓겨난 이들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광산과 농장에서 필요로 하는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착취는 결국 독립전쟁의 도화선이 된 게릴라전의 기폭제가 되었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세력을 몰아낸 오밤보스 사람들은 이러한 역사를 결코 잊지 않고 있다.

이차세계대전 이후에 아프리카에서 유럽의 제국주의 세력들이 물러가면서 나미비아 문제가 국제연합에 넘어갔으나 남아프리카는 1966년 국제연합이 총회에서 나미비아의 독립을 직접 결의할 때까지 나미비아의 독립을 허용하지 않았다. 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 (Southwest Africa People"s Organization, SWAPO)는 나미비아의 독립전쟁을 지원하였고, 보밤보스 주민들은 마침내 복수하였다. 한편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950년 이래 나미비아에서의 인종분리정책을 자국보다 더 강력하게 실시하면서, 나미비아를 인종과 사회 정책들의 실험장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국제사회는 잠비아에 망명 중이던 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SWAPO)를 나미비아의 정식 정부로 인정하였다. 가장 잔인한 군대인 남아프리카의 군대는 나미비아에서 14년 동안 고문과 살인등의 잔혹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았다. 남아프리카는 나미비아의 우라늄과 다이아몬드 광산의 시장성이 떨어지고, 어업량이 감소하면서, 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와 계속 전투를 벌이는 것이 실효가 없다고 판단하고 비로소 이 지역에 대한 야망을 포기하였다. 1990년, 국제연합의 중재 아래 독립을 위한 협상이 시작되었고, 나미비아는 마침내 독립국이 되어 헌법을 제정하고, 세계에서 가장 인권이 중요하게 인식되는 나라가 되었다. 첫 번째 선거에서 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 (SWAPO)의 지도자였던 삼 누조마(Sam Nujoma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제 나미비아는 이 지역에서 정치적으로 가장 안정된 나라가 되었다. 1990년 이래 4년마다 누조마가 재선되면서 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SWAPO)가 계속 집권하고 있다. 나미비아는 여전히 높은 수준의 경제력과 환경 문제에 대한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후천성 면역결핍증이 끔찍할 정도로 퍼지고 있어, 인구의 23퍼센트 가량이 감염되어 있다.

19세기부터 시작하여 영국과 독일, 핀란드의 개신교 선교사들의 선교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오늘날 국민의 대다수가 기독교인이고, 그들 중 대부분은 루터교회 교인들이다. 남아프리카의 통치기에 교회는 억압자들에 대하여 저항의 목소리를 높였고, 특별히 인종분리정책(Apartheid)에 저항하였고, 불법구금과 추방, 망명에 대해 반대하는 운동을 벌였다. 목회자들과 사제들의 부족이 기독교회의 계속적인 큰 문제이다. 1978년 나미비아 교회협의회(Namibian Council of Churches)가 조직되었고, 독립투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수천 명의 망명자들의 귀환과 재활을 지원하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Republic of South Africa)

통계
인구 : 4천 5백 50만 명
정부형태 : 민주공화제
언어 : 영어, 아프리카어(Afrikaans), 영어, 줄루어(Zulu), 코사어(Xhosa), 츠와나어(Tswana), 세소토어(Sesotho), 소토어(Sotho), 페디어(Pedi), 쏭가어(Tsonga), 벤다어(Venda), 느데벨레어(Ndebele), 시스와토어(siSwato)  기타 언어들
문자해독율 : 남성 84%, 여성 81%
종교 : 기독교 79.8%, 이슬람교 1.5%, 힌두교 1.5%, 유대교 0.2%, 부족종교.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남아프리카 교회(Church of Province of South Africa), 아프리카 공교회 협의회(Council of African Institute Churches), 남아프리카 복음주의 루터교회(Evangelical Lutheran Church in Southern Africa), 남아프리카 복음주의 장로교회(Evangelical Presbyterian Church in South Africa), 남아프리카 감리교회(Methodist Church of Southern Africa), 남아프리카 모라비안교회(Moravian Church in South Africa), 아프리카 장로교회(Presbyterian Church of Africa), 남아프리카 연합 회중교회(United Congregational Church of Southern Africa), 남아프리카 연합 장로교회(Evangelical Lutheran Church in Southern Africa), 남아프리카 연합 개혁교회(Uniting Reformed Church in Southern Africa)

역사
남아프리카는 아프리카의 가장 남단에 위치하여, 대서양과 인도양을 접하고 있다. 나미비아, 보츠와나, 짐바브웨, 모잠비크, 스와질란드 등이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의 남아프리카로 밀려온 반투족(Bantu)은 남아프리카의 유일한 정착민으로 석기시대부터 그 지역에 살아온 황인종인 산족(San)과 코이코이족(Khoikhoi)족을 만났다. 이들 새로운 이주민들은 코사족(Xhosa)으로 불렸다. 1780년 경, 이들은 희망봉 북쪽으로 이주하면서 네덜란드 거주민들과 상봉하였다. 네덜란드 개혁교회 소속의 네덜란드인들은 스스로를 선택된 백성으로 자부하고 인종분리주의(Apartheid,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절대적인 진리로 신봉했다. 이들 반투족과 네덜란드 이주민들은 백년이 넘도록 협약들을 체결하기도 하고, 서로의 가축을 훔치고, 토지를 강탈하고, 서로 전투를 벌였다.

1820년 영국인들이 남아프리카를 정복하였다. 영국인들은 원주민들의 반발이 가라앉을 때까지 그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남아프리카의 백인계 주민들(Afrikaners)과 모든 것을 처리하였다. 백인계 주민들은 현재 두 개의 국가를 세웠고, 다른 유럽인들과 결집하여 그들이 소유한 좋은 농장들이 있는 남아프리카 중앙의 평야지대에 살고 있다. 이 국가들은 1899년부터 1902년까지 벌어진 보어전쟁(Boer War)으로 전복되었다. 이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고, 수천 명의 보어인들과 백인계 주민들은 그들의 고향을 떠나야 했다. 영국은 집단수용소들을 건설하여 백인계 주민들을 수용하였는데, 이 수용소들에서 죽어간 여성들과 아이들을 포함한 백인계 주민들이 2만 5천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때문에 보어인들의 정당한 불만은 백인계 주민들의 고난과 분노, 자기연민적인 민족주의에 함께 들어있다.

1910년 영국의 식민지였던 케이프타운은 북동부의 보어 트란스바알(Boer Transvaal) 주와 동부의 나탈(Natal) 지역과 함께 자치권을 가진 남아프리카 연방(Union of South Africa)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투표권이 없었던 흑인들의 입장은 고려되지 않았다. 보어인 장군 잔 스무츠(Jan Smuts)는 연방에 속하지 않은 나머지 보어인들로 구성된 남아프리카를 지휘하여 일차세계대전 당시 영국군에 서서 참전하였고, 이차세계대전에도 다시 한 번 영국과 함께 전쟁에 참여하였다. 1948년 보어인들의 민족주의가 고양되면서 처음으로 민족당(National Party)이 구성되었다. 보어 민족주의자들이 정권을 획득하자 그들은 곧바로 모든 “유색인종들”의 시민권과 백인이 아닌 주민들의 투표권을 영구히 박탈하였다. 분리주의는 그들의 암호였다. 수천 명의 주민들이 갑자기 그동안 살던 지역에서 살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통지를 받았다. 요하네스버그(Johannesburg)에서는 한 마을 전체가 쫓겨나야 했다. 이러한 인종차별의 사회적 적용은 히틀러 치하의 독일서도 볼 수 없던 방식이었다.

1961년 이 나라는 영연방에서 분리하여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 독립하였다. 1963년 아프리카 민족회의(African National Congress, ANC)의 지도자인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가 감옥에 갇혔다. 인종분리정책에 대한 국세사회의 비난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고,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개혁을 위한 압력이 높아졌다.

수십 년간의 영웅적인 반대와 저항, 그에 따른 고난의 세월이 지나고, 1990년 인종분리정책을 철폐하면서 민족당의 마지막 대통령이었던 드 클러크(F. W. De Klerk)는 만델라를 석방하였다. 4년간의 치열한 협상을 통하여 처음으로 모든 인종이 참여하는 민주적인 선거가 실시되었고,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 후 세 번의 선거가 이어졌다. 만델라의 뒤를 이어 타보 므베키(Thabo Mbeki)가 대통령이 되었고 아프리카 민족회의는 한때 무소불위를 자랑했던 민족당을 흡수하였다.

은퇴한 성공회 대주교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를 위원장으로 하는 진실과 화해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가 1996년 발족하였다. 이 위원회는 1960년부터 1993년 사이에 모든 진영에서 자행한 끔찍한 잔혹 행위들을 조사하였다. 이 위원회는 진상을 파악한 후에 사면과 보상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위원회는 과거의 희생자들에게 2만 건이 넘는 사례들을 청취하였고, 8천 명을 사면하였다. 위원회의 활동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과거에 대한 치유가 크게 이루어졌다. 현재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상당히 발전된 새로운 헌법을 개정하였고,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인권보호국이다.

인종분리정책 체제에서 정착된 정치경제적 구조를 개혁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직도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 백인들과 흑인들, 도시와 농촌 사이에 깊은 간격이 있다. 에이즈의 확산은 심각한 상태로 국민의 20퍼센트 가량이 감염되어 있다. 남아프리카에서 에이즈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5백만 명에 달하고 있다. 이는 아프리카의 다른 어떤 나라보다 많은 수치이다. 인구의 절반은 깨끗한 식수와 위생적인 환경이 부족한 상태에서 살고 있다. 도시지역은 폭력 범죄가 가장 큰 사회문제로 떠오르고 있는데, 특히 요하네스버그와 케이프타운이 심각하다. 

네덜란드인들이 남아프리카에 처음 찾아온 선교사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19세기말까지 네덜란드에서 온 백인주민들을 대상으로 선교와 목회활동을 벌였다. 18세기 초에 영국 선교사들의 뒤를 이어 원주민들을 위한 모라비안 선교사들이 도착하였다. 감리교회와 루터교회는 기독교가 성장하는데 강력한 힘이 되었다. 오늘날 국민의 80퍼센트 이상이 기독교인들이고, 이들은 3천 3백 개가 넘는 교단에 속해있다.

1936년 조직된 남아프리카 교회협의회(South African Council of Churches)는 인종차별과 억압에 대한 반대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였다. 그러나 교회들 자체가 인종적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백인계 주민들이 중심인 네덜란드 개혁교회는 인종분리정책을 지지하는 신학을 발전시켰고 결국 다른 세계 교회 연합회들과 함께 인종분리정책을 이단적인 정책이라고 선언한 세계 개혁교회 연맹(World Alliance of Reformed Churches)을 추방하였다. 인종분리정책 시기에 다른 많은 교회들도 이 정책에 대하여 적극적이고 원칙적으로 반대하였고, 그로 인해 박해를 받았다. 인종분리정책에 대한 반대운동으로 인하여 많은 기독교인들이 생명을 잃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추방되거나 가택연금, 혹은 감옥에 갇혀야 했다. 교회들은 국제적 차원에서 반대운동을 계속하였고,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인종차별 반대운동(Program to Combat Racism)을 성공적으로 실천하였고, 또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차별과 아파르트헤이트의 희생자들을 돕는 재원과 인식을 고양하는 일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2004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정부는 민간인에게 수여하는 가장 높은 훈장인 올리버 탐보 메달(Oliver Tambo medal, 남아프리카의 대표적인 민족운동가의 이름을 딴 훈장: 역주)을 인종차별 반대운동(PCR) 책임자인 불드윈 스졸레마(Baldwin Sjolema)에게 수여하면서 세계교회협의회의의 공로를 인정하였다. 1984년 아파르트헤이트의 평화적인 종식을 위하여 평생을 싸워온 공로를 인정받은 투투 대주교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스와질란드 왕국 (Kingdom of Swaziland)

통계
인구 : 110만 명
정부형태 : 정대왕정제
언어 : 시스와티어(siSwati)
문자해독율 : 남자 81%, 여자 78%
종교 : 시온교회 교인들 40%, 가톨릭 20%
세계교회협의회 회원 : 없음

역사
스와질란드는 아프리카의 전통적인 왕정이 남아있는 마지막 나라이다. 이 나라의 왕은 실제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지혜로운 원로들과 함께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 레소토와 마찬가지로, 남아프리카와 모잠비크 사이에 끼어있는 완전한 내륙국이다.

1840년 므스와지(Mswazi) 왕은 줄루족과의 전쟁에서 도움을 받기 위하여 영국인들을 초청하였다. 그 후 1894년부터 1899년까지 남아프리카의 보호령으로 있던 스와질란드는 1902년 원주민 추장들을 인정해주는 정책을 편 영국의 통치 아래 들어갔다. 1968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였다. 1986년 므스와티(Mswati) 삼세가 왕이 되었는데, 그의 부친으로 선왕이었던 소부자(Sobhuza) 이세는 공식적으로 60명이 넘는 왕비들이 있었다고 보고되었다. 왕과 전통적인 부족의 원로들로 리코코(Liqoqo)라고 불리는 장관들은 왕립목장 주변에서 회합을 가졌다. 리코코가 모일 때 장관들은 예복과 전통의상을 입었는데, 이 전통의상은 사자 가죽과 화려한 깃털들, 큼직한 장신구들을 달린 의상이었다. 이론적으로는 관직의 고하에 상관없이 누구든지 이 자리에 올 수 있고, 어떠한 문제이든지 청원하는 것이 허용되었다. 일반적으로 소토어를 말하는 국민들은 이러한 정부 형태를 반가워하지 않았고, 새로운 헌법의 제정을 주장하였다. 1978년 새로운 헌법이 제정되었으나 공포되지 않은 채 아직도 중지된 상태이다.

스와질란드는 경제적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의존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물품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인구의 절반 정도가 자립적인 농업과 목축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웃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과잉 농업과 목축업으로 토지의 오염이 심각해지고 있으며, 무분별한 밀렵으로 야생동물들의 생존도 위협을 받고 있다. 홍수와 가뭄은 일상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에이즈는 재앙에 가까운 수준으로 확산되어 인구의 33퍼센트가 감염되어 있으며, 신생아들의 평균 기대수명은 38세로 떨어지고 있다.

1825년 남아프리카에 있던 감리교 선교사들이 스와지(Swazi) 왕의 초청을 받아 찾아왔고, 오늘날까지 가장 큰 교세를 가진 개신교회로 남아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 대부분은 토착교회인 시온교회(Zionist)와 다른 독립교회 교인들이다. 1930년대에 이들 교회들을 스와지 민족교회(Swazi national church)로 연합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실패하였다. 오늘날 이 나라의 기독교회들은 매년 부활절에 왕궁에 모여 연합예배를 드린다. 1976년 조직된 스와질란드 교회협의회(Council of Swaziland Churches)는 유일한 에큐메니칼 단체로 로마가톨릭교회와 아프리카 루터교회, 성공회, 메논파, 아프리카 감리교회 등이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함께 드리는 기도

감사기도 제목
● 인종분리정책을 종식하고 모든 종류의 인종차별을 반대하는 운동에 참여한 세계의 모든 일꾼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희망의 횃불을 높이 들고 국민들에게 자유를 선물하고,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고 민주주의의 모델이 된 넬슨 만델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19세기 초에 처음으로 기독교로 개종하고, 남아프리카의 코사족 사람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한 코사족 선지자 느치카나(Ntsikana)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코사족 형제들을 위하여 만든 찬양들과 그들에게 전한 설교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에이즈로 인하여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돌보는 사람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에이즈의 심각성을 일깨워주고,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을 위하여 봉사하는 사람들을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하나님의 백성들이 질병으로 죽어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성문제를 교회의 문제로 제기한 용감한 기독교인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정의와 자유, 희망을 선포하는 노래들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높은 음정과 동시에 두 음정을 노래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남아프리카에서 노래할 때 함께 연주하는 악기 우하디(Uhadi)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 이들 나라에서 교회의 일치와 정치, 경제, 문화적 도전에 대한 신앙과 선교적으로 일치된 목소리로 응답하려는 에큐메니칼 노력으로 인하여 감사드립니다.

중보기도 제목
● 이들 나라의 정부들이 안정과 정의를 갖추어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공평하게 일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최소한의 생존 조건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과 비인간적인 주택에서 사는 사람들, 안전한 식수나 위생적인 환경을 갖지 못한 실직자들과 계속되는 기근으로 영양실조에 걸려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이들 나라의 천연자원에서 나오는 부의 공정한 분배가 이루어져 외국 자본에게 이익이 돌아가지 않고 국민들이 유익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인종 문제로 분열된 이들 나라의 치유와 재건이 계속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인종과 피부색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들이 혜택을 입을 수 있는 토지와 교육 개혁, 경제 정의와 의료보험 개혁을 이룰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여전히 빈곤의 공격을 받으면서 또한 가정과 국내의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여인들과 어린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에이즈의 치료법이라는 잘못된 믿음으로 성폭행을 당하고 있는 어린 소녀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 질병과 영양실조로 아이들을 잃은 부모들과 에이즈로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함께 드리는 기도문

(1)
주님, 주님은 우리의 땅을 알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지상에서 사셨던 지역과 너무나 비슷합니다.
때때로 눈에 덮인 높은 산들과 뜨거운 낮은 지역이 대조적입니다.
주님은 때로 산 위로 홀로 가셨습니다.
주님은 그곳에 신비한 평화와 아름다움이 있는 것을 아셨습니다.
주님은 또한 산 아래에서 간절히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도 알고 계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산 위에서, 그리고 많은 사람들 속에서 주님을 기다립니다.
<익명의 레소토인>

(2)
주님,
주님께서 저에게
주님의 교회를 지키라고
명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저의 생명을 버리라고
명하셨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콜린 윈터(Colin Winter) 감독, 나미비아>

(3)
주님, 우리에게 당당히 설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스스로 당당하게 서지 못하는 이들을 위하여 서게 하옵소서.
우리도 그렇지 못할 때 우리 자신도 당당하게 서게 하옵소서.
주님 외에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주님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사랑하지 않게 하옵소서.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국가나 정당, 혹은 정부나 교회 등,
주님 외에 다른 것을 하나님으로 섬기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이 주시는 평화 외에 다른 평화를 추구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눈과 귀와 마음을 열어주셔서 평화의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해야 할 평화의 일이 무엇인지 항상 알게 하옵소서.
<알란 파튼(Alan Paton), 남아프리카 공화국>

(4)
주님, 우리 앞에 행하시며 우리를 인도해 주옵소서.
우리 옆으로 함께 걸으시며 친구가 되어 주옵소서.
우리 위에 계시고 우리를 지켜주옵소서.
우리 뒤에 계시고 우리의 길을 보여 주옵소서.
우리 밑에서 우리를 지지해 주옵소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를 사랑해 주옵소서.
<익명의 남아프리카인이 감옥에서 쓴 기도문>

(5)
오, 주님, 저를 도우셔서 더욱 사랑하게 하옵소서.
오, 주님, 저를 도우셔서
 불가촉천민들, 나병환자들, 미혼모들,
 국가에 반대하는 사람들, 감옥에서 풀려난 사람들을
 두려움 없이 사랑하게 하옵소서.
저를 도우셔서 현실에서 패배한 사람들, 절망한 사람들,
 일찍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주님의 사랑으로 신앙을 회복하게 하옵소서.
저를 도우셔서 저의 사랑으로 주님의 사랑을 증거하게 하옵소서.
그리고 새로 오는 날 속에서 주님의 평화를 위하여 일하게 하옵소서.
<알란 파튼(Alan Paton), 남아프리카 공화국>

(6)
여기 앉아 주위를 둘러보고
여기에 와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있는 저에 대해서
어느 누가 신경을 쓰겠습니까?

작은 목소리 하나가 여전히
속삭입니다. 그래, 기쁘게 살아야지.
주님은 저의 왕국을 둘러싼 성벽의
귀중한 머릿돌이십니다.
<해리 알프레드 위제트(Harry Alfred Wiggett), 남아프리카 공화국>

(7)
고백의 기도
주님, 우리는 매일같이 비인간적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님, 주님께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의 가진 것과 우리의 모습 그대로 사랑하지 못한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때로 사랑의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때로 우리 자신이 위험해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주님, 주님께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를 서로를 구분하였고 분리의 담을 쌓았습니다.
주님, 주님께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는 침묵을 지키거나 무분별한 말을 했습니다.
우리가 선입견의 담을 쌓았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우리의 이기심과 동정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이웃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고 시간을 내지 않았음을 고백합니다.
성령이여, 우리에게 말씀하옵소서. 우리의 귀가 어두우니
용서하라고 명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게 하옵소서.
지금 오셔서 충만케 하시고 죄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옵소서.
<로즈위(Rozwi), 남아프리카 공화국>

(8)
오, 주님, 저의 눈을 열어주셔서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보게 하시고,
귀를 열어주셔서 그들의 울부짖음을 듣게 하시고,
마음을 열어주셔서 그들을 돕게 하옵소서.
분노하고 강한 이들에게서
연약한 이들을 지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옵소서.
분노하고 부유한 이들에게서
가난한 이들을 지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하옵소서.
사랑과 소망과 믿음을 필요로 하는 곳을 알게 하시고,
그곳에 사랑과 소망과 믿음을 전하게 하옵소서.
저의 눈과 귀를 열어주셔서, 새로 오는 날에,
주님의 평화를 위하여 일할 수 있게 하옵소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 있는 성 조지 성당에서 드린 기도문>

(9)
주님은 강한 요새입니다.
주님은 참으로 (피할) 산성입니다.
주님은 가장 높은 곳에 거하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저 높은 곳에서 생명을 창조하셨습니다.
주님은 하늘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주님은 별들과 성단을 창조하셨습니다.
밝게 빛나는 별은 주님의 가르침을 전해줍니다.
주님은 소경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들에게도 주님의 창조의 목적이 있겠지요?

나팔 소리가 울립니다. 우리를 부르는 소리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영혼을 붙잡는 사냥꾼입니다.
주님은 서로를 거부하는 우리를 하나로 모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모두 덮으시는 거대한 담요이십니다.

주님의 손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주님의 발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왜 주님의 피를 흘리셨습니까?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피를 쏟으셨습니다.
우리에게 그렇게 대속을 치룰 가치가 있는 것입니까?
우리에게 주님의 왕국에 들어갈 만한 자격이 있는 것입니까?
<알란 파튼(Alan Paton), 남아프리카 공화국>

(10)
주님께서 주님의 목적을 위하여
저의 손을 원하셨습니다.
저는 즉시 제 손을 드렸지만,
주님의 일이 힘들어서 제 손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 불의에 대항하고 고발하라고
저의 입을 원하셨습니다.
저는 그러다가 잡혀가는 것은 아니냐고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께서 가난한 사람들의 아픔을 보라고 저의 눈을 원하셨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싫어서 눈을 감았습니다.

주님께서 저를 통하여 당신의 일을 하시려 저의 생명을 원하셨습니다.
저는 “깊이 참여하지 않는 선에서” 제 삶의 한 부분을 드렸습니다.

주님, 주님을 섬기는데 계산적이었던 저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저는 제가 편할 때만 일했고,
저는 안전한 곳으로만 다녔으며,
그리고 저는 일을 잘 하는 사람들과만 일했습니다.

아버지, 저를 용서해 주시고,
새롭게 하시고,
당신의 유익한 도구로 보내주셔서,
십자가의 의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게 하옵소서.
<느치카나(Ntsikana, 서구의 선교사들이 오기 전에 기독교인이 된 코사족의 선구적인 기독교인)의 찬송>

(11)
화해의 예식
다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주님의 선하심으로
하나님의 가족의 일치를 거역한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다른 이들을 억누르는 우리의 본성과
억압당하는 것을 깨닫기 두려워하는 마음을 보게 하옵소서.
이 세계를 파괴하는 세력에 대적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님과 화해하도록 하옵소서.

물의 축복
우리 주 하나님,
뜨거운 태양빛으로부터
우리의 손과 몸을 식혀주는 이 물과 함께 하옵소서.
그리스도여 자비를 베푸소서.
이 물로 우리 마음의 열기가 고요히 사라지게 하옵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이 물로 우리의 상처 입은 감정을 치유하사고,
과거의 분노가 사라지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여 자비를 베푸소서.
참과 거짓의 비난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옵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의 죄의 더러운 자국들을 깨끗케 하옵소서.
그리스도여 자비를 베푸소서.
불의하게 죽은 이들의 핏자국을 깨끗케 씻어주옵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정하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여 자비를 베푸소서.
모든 의심의 흔적이 사라지게 하옵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이 물로 새로운 공동체를 건설하는 새로운 출발을 하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여 자비를 베푸소서.
이 물로 우리의 마음에 정한 영혼을 채워 주옵소서.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이 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서로를 통하여, 또 우리 서로를 향하여, 주님과 화해하게 하옵소서.

물로 예식을 정케 함
지유와 화해와 소망의 상징하는 의미에서 깨끗한 물로 얼굴을 씻는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사람들이 앞으로 나와 얼굴을 씻는다. 이 사이에 회중은 찬송을 부를 수 있다.

사죄의 기도
진심으로 회개하는 모든 이들을 용서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옵소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죄에서 자유케 하옵소서.
모든 선하심 안에서 우리를 확증하고 우리에게 힘을 주시고,
영생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헌신의 기도
우리는 고백하는 것만이 아니라
수백 년 이상 입은 상처를 치유하고
모든 사망의 권세에 대항하는 싸움에 참여하라는 소명을 받았습니다.
고요한 중에 성령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성령이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성령이 여러분에 대하여 어떤 제안을 하십니까?
여러분의 다음 걸음은 무엇입니까?

침묵
<조에 세레마네(Joe Seremane), 남아프리카 공화국>

(12)
하나님, 우리 아버지,
우리가 함께 모여 주님을 높이는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를 낮춰 주님의 모든 교회가 함께
주님께서 온 세계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을
기념하며 기억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함께 하셔서 우리가 주님의 자녀인 것을 알게 하시고,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시고,
우리가 평화의 연대 속에서 계속하여 연합하게 하옵소서.
그것이 주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와 맺으신 언약인 줄 믿습니다.
<제파니아 카미타(Zephania Kameeta), 나미비아>

(13)
시편 139편
주님께서 저를 살펴보셨으므로 저를 아십니다.
주님은 제가 한 모든 일을 아십니다.
멀리서도 저의 모든 생각을 아십니다.
주님을 고백하거나 부인하는 것을 보십니다.
심지어 제가 말하기 전에
제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아십니다.
주님은 저의 모든 편에 항상 계십니다.
주님의 능력으로 저를 보호하십니다.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저를 아셨기에
저에 대한 지식이 너무나 깊으십니다.
주님의 지식은 저의 이해를 넘어섭니다.
이 세상에서 주님을 섬기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제가 어디로 가서
 주님의 평화의 도구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얼마나 먼 곳으로 피하여
 주님을 고백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만일 제가 “중립적”인 곳으로 피할 찌라도
 주님은 거기에 계실 것입니다.
만일 제가 제 사무실의 타자기 뒤에 숨을 찌라도
 주님은 거기에 계실 것입니다.
만일 제가 억압당하는 우리 국민들의 억압을 피하여
 가장 먼 나라에 가서 난민이 될 찌라도
 주님은 거기에 계실 것입니다.
  거기에서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실 것입니다.
저는 고통과 수치를 감출 수 있는
 어둠을 원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제 삶에 주신 주님의 사랑의 빛으로
 어둠을 비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고통의 어둔 밤도
 주님의 현존의 빛 안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어머니가 저를 잉태하기 전에 이미
 주님의 형상대로 저를 창조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이 하신 너무나 놀라운 일들과
 우리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는 일들을 찬양합니다.

오, 하나님, 저를 살피시고 저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옵소서.
저를 시험하시고 제 생각을 정하게 하옵소서.
제 인생의 혁명을 시작하셔서
저를 새롭게 하시고
저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옵소서.<제파니아 카미타(Zephania Kameeta), 나미비아>

(14) 은총과 능력의 하나님, 경건하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 있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주님께 속해있기를 주님께서는 바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선한 작품이 될 수 있도록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부모처럼 다가와 주셨음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의 피조물을 향하여 사랑과 보호의 마음으로 다가오셨습니다. 주님의 자식들을 오랫동안 지켜와 주셨음에 참 감사드립니다. 충만과  기쁨과 동시에 위협과 유혹과 의심의 시간 안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켜주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세월의 도전 안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의 소음 안에서도 주님을 들을 수 있도록 귀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유혹의 화려함에서도 주님을 볼 수 있도록 우리에게 눈을 주셨습니다. 박해와 장애와 불행의 시대 안에서도 우리를 희망의 표징으로 불러주셔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예수는 그의 죽음 앞에서 베다니의 한 여인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다. 당신은 우리의 공포와 두려움 위에 당신의 말씀과 귀한 치유의 기름과 은총을 부여해 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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