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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평화를 위한 종교대화의 과제- KNCC 이상윤 국제국장
이름 교회협 이메일 kncc@kncc.or.kr
작성일 2003-03-06 조회수 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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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평화를 위한 종교대화의 과제


이상윤(NCC 국제국장)

1. 소개말

9.11 뉴욕 테러는 미국으로 하여금 군사행동에 있어 지역적 이동 개념에서 벗어나 지구촌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불요 불급의 상황에 대처하라는 우주전의 개념으로 전환시킨 일대 사건이었다. 이제는 어느 특정 지구에서 전쟁을 치루는 것이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 가상의 적들이 치고 빠져나가는 모든 군사행동에 대항하는 전략으로 바뀌었다. 지구촌 전체를 상대로 하는 이러한 전략수행의 전환은 이라크전과 북한 핵문제를 처리하는 전략에서도 예외가 없을 것이다. 전후 측방 좌우를 동시에 관찰하고 대응하려는 이러한 변화는 디지털 체제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아프간전쟁을 계기로 아랍권의 양심세력들은 미국과의 공조체제를 번복하고 민족주의적인 전략대응과 방식을 고수하면서 재래식 전쟁을 추동하려고 한다. 전쟁수행 방식에 있어서 디지털 혁명에 대항하는 유일한 방식은 역시 아날로그인 셈이다. 일대 일로 철저하게 훈련시키고 훈련내용을 철저히 암기시키고 일단 목표물을 정하면 철저히 마음을 가다듬고 인간 폭탄으로서 자기정체성을 결정하고 전쟁을 수행한다. 미국 주도의 세계화는 반전여론을 향도하고 평화만들기의 목소리를 높인다. 전쟁을 반대하는 인간방패들이 이라크의 바그다드로 향하고 유럽 전체는 반전 정서로 물결친다. 미국의 전쟁 불사의 의지가 꺾이면서 반전평화의 목소리가 지구촌전체를 덮는다. 여기에는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지난 해 5월 비극적인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 터진다. 일반적인 교통사고 처리를 했다고 강변하는 미군의 사고해당자에 대한 무죄평결은 이 사건이 단지 교통사고 아니고 한민족의 자본심을 건드린 돌이킬 수 없는 미군대 한민족의 기싸움으로 번졌다. 반미감정은 급물살을 탔고 반미 반전 평화운동은 년말의 대통령 선거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오판이 역사를 정도에 올려놓은 순간이었다. 평화만들기라는 운동은 오래된 것이다 그러나 이순간 이것은 걷잡을 수 없는 현실의 요청에 의하여 태풍이 되고 불길이 되고 자존심이 되었다.말로서 농단하기에는 너무도 거대한 폭풍이 된 것이다. 덩달아 미군의 한국주둔문제가 정식으로 논의되고 물론 철수문제도 도마 위에 올려졌다. 가니 마니 하는 문제가 아니라 미군 3만8천의 목숨이 한반도 평화의 빌미가 되었고 펜타곤은 한국을 전쟁의 제2 후보지로 정해놓은 것 같은 시나리오들을 흘렸다. 이것인 이제 평화만들기 같은 류의 논의를 크게 벗어나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한반도 인접국들의 전쟁 시각과 전쟁수행의 방법들을 까발려 놓은 시간을 제공하였다. 일촉즉발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북한 핵은 분명히 있고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로서의 북한은 미국이나 일본에 지지 않는 강성대국을 이루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 반하여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한반도내의 보수 수구 세력들은 미군철수 반대와 전쟁불사론도 서슴지 않는 보수의 대반격작전에 나섰다. 2003년 3월 서울 봄은 이제 점입가경이다. 반전평화와 미군철수 반대라는 극단적인 대립 양상을 빚는 것은 지난 세월의 유신이자 현시점 한국의 선택의 기로에 서있는 것이다 국방에 있어 자주는 엄청난 국방비를 부담해야하고 민족공조라는 과제는 남북한간의 체제와 이념을 뛰어 넘는 급진적인 협력의 단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남북의 평화만들기 의지 정도로는 감당이 안되는 문제이고 북한 핵을 제거하고 미군이 남한에 주둔하라는 주문은 남한의 현실주의자들의 생각일 뿐이다. 이렇게 해서 지난 30년 이상 이 나라에 민주화와 인권운동의 중심 축으로 위치해온 NCC는 모처럼 불었던 진보수 합동의 꿈을 접고 진보 보수의 갈등에 각을 세우고 이참에 진보적 성향을 분명히 하고 반전평화 통일 민주화라는 기존의 운동 축을 발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이러한 급격한 정치지형의 변동은 9.11 뉴욕 테러에서 촉발된 문명충돌론의 여파로 종교간의 대화 문제가 등장하였고 여기에 덩달아 학술 문화 단체들이 너도나도 뛰어들어 느닷없는 이슬람 신앙연구 열기가 한동안 지속되었다. 원천적으로 다종교 사회인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9.11 뉴욕 사태가 일어난 후 종교계 일반에서는 종교대화의 열기가 서서히 달아올라 이슬람과의 대화를 꾸준히 추진해 왔고 이번에도 3 1.민족대회를 계기로 남한의 7개종단과 북한의 4대 종단이 남북한의 민화협을 매개로 하여 접촉하고 대화하는 대화 프로그램이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지난 해 8.15 민족대회를 시발로 이어지는 남북한간의 민간 사회 단체분야와 종교단체가 연석하는 민족행사가 서울과 금강산을 각각 방문하면서 나름대로의 성과를 이어오고 있다. 올해에도 예외없이 3월 북한은 서울을 방문하여 3. 1민족대회를 치루었다. 그동안 에큐메니칼 운동을 교회간의 연합사업 쯤으로 알고 지내던 우리현실에서 종단간 민족 구성원간 종교와 이념을 극복하는 대화의 접촉을 시도하고 명실상부한 남북한 간의 에큐메니즘 시대를 연 것은 그 나름대로의 시대적 소명이 엿보이며 교회의 선교적 과제가 아닌가 한다. 따라서 이러한 빛에 따라서 종교간의 대화와 협력의 문제를 제기하는 종교대화의 문제를 논의해 보자.

2. 종교대화의 과정

본래 기독교 선교는 교회 안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인 만치 믿지않는 이들을 다루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이들을 통털어 이교도라는 개념으로 간주해온 초대 교회는 이들에 대한 특별한 배려는 없었다. 있다면 그것은 이들이 자기 신앙을 버리고 교인이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교회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것은 아주 분명한 것으로서 그리스도 구원의 밖에 존재하는 타종교의 사람이다. 실제로 열심있는 신앙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러한 이교도들은 개종 외의 방법으로는 접근 불가능한 존재로서 어떠한 접촉도 고려하지 않았다. 이처럼 강력한 입장을 가진 교회가 1910년 에딘버러 세계선교대회는 이 세대 안에 전 세계를 복음화를 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다진 대회였는데 그래도 이 대회에서 나름대로는 이교도들에 대한 개념과 입장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것이 빌미가 되어 훗날 WCC는 세계선교와 복음화 위원회가 '하나님의 말씀과 타종교를 믿는 이들' 이라는 특별 위원회를 설치하여 운영하였다. 이것은 매우 타협적인 용어로서 이교도라는 말 대신 다른 신앙을 하는 이들 정도로 완화된 어휘를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WCC는 실제로 타종교의 종교문화와 흐름에 대하여 한 걸음 더 접근하여 '대화' 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1971년 이디오피아 수도 아디스 아바바에서 모인 WCC 중앙위는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의하였다. 결국 WCC는 신앙과 직제 위원회 산하 '타종교 및 이념과의 대화를 위한 소위 사무국' 을 설치하였다. 이어서 WCC는 타종교와 대화하는 크고 작은 협의회를 개최하였다. 1979년 WCC는 이 협의회 활동을 기초로 하여 타종교 및 이념과의 대회 지침서를 발간하였다. 1982년 WCC는 여기에 보태어 '유대교 기독교 대화의 에큐메니칼한 재고'라는 자료를 발간하였고 1992년 '기독교-무슬림 대화에 관한 이슈' 라는 소책자를 발간하였다. WCC는 여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프로그램강화 위원회에 넘겼다. 1999년 WCC 중앙위원회는 타종교간의 관계 부를 설치하여 특별 분과를 운영하였고 총무 활동 산하에 묶어 두어 타종교 대화와 관계국을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이들은 2001년 4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모임을 갖었고 2001년 10월 이태리 보세에서 모였으며 2002년 5월에는 스웨덴에서 모임을 갖었다. 이들 모임에서는 과거 종교대화의 지침들을 개정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지난 반세기동안 세계교회협의회의 노력은 이교도에서 타종교의 신앙인들로 이해의 폭을 넓혔다는 데 큰 의의를 지닌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우리의 이웃으로서의 타종교인에 대한 발걸음을 옮겼다는 의의가 있다.

3. 대화의 유형들

일반적으로 종교대화의 유형에는 세 가지 정도가 있다. 첫 번 째는 학문적인 접근 방법이다. 여기에는 신학자와 종교전문가들이 참가하여 각자의 종교철학과 전통에 입각하여 대화를 시도한다. 이러한 노력은 우선 종교간에 품고있던 편견을 없애주고 상호간에 품고 있던 잘못된 개념들을 교정시켜준다. 그러나 문제는 한 개인의 종교에 대한 이해를 받아들이는 선에서 마무리된다는 단점이 있다. 두 번째 유형은 영적 대화이다. 이러한 대화는 상대방의 영적 동굴로 인도하여 탐사하는 방식으로서 기도회라든지 명상 예배 등에서 교류가 이루어진다. 물론 여기에는 참가자들이 상당한 정도의 영성적 수준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는 삶으로서의 대화관계이다. 이러한 대화관계가 이루려고 하는 목표는 날로 증가하고 있는 폭력 상황에서 평화와 조화로운 공존을 이룩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학문적 영적 대화를 통하여 대화의 관계가 더욱 풍성해지는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대화란 만남과는 다른 것이다. 만남이란 어떤 갈등조정에 필요한 협상의 장소로 개인이나 조직이 합류하는 형태를 일컫는 것이지만 대화처럼 공통의 기반 위에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나아가서 지속적인 대화관계를 갖으려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대화에는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든든한 기둥들이 받쳐주며 공동체의 평화와 정의를 건설해 가는 진실된 사랑과 진실이 기초를 이루는 것을 말한다. WCC는 종교대화 활동에 적어도 여기에 지적하려는 정도의 중요한 기초를 가지고 활동하였다. 첫째 다양성이다. 하나님이 지구상에 생존하고 있는 각기 다른 이민족들의 삶을 담보하는 다양성에 기초한 것으로서 둘째 성경이 증거하고 만물 가운데 그것을 내신 한 분이신 하나님이 주제하며 온 인류를 하나의 가족처럼 아우르는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더 높은 수준에서 역사하신다. 성령은 민중들의 삶과 전통 속에 살아있는 신앙 속에 일하고 계시며 나의 이웃들의 신앙을 깊이 있게 이해하므로서 나의 신앙을 좀더 성숙하고 책임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서로 다른 상대방의 다른 신앙을 이해하는 것은 보다 성숙한 신앙과 영성을 요청한다. 따라서 종교대화 시에 필요 한 대화의 지침으로서는 대화에 참여한 이들은 우선 먼저 자기가 속해 있는 공동체의 본질과 속성을 충분히 이해하고 파악한 위에 효과적인 대화의 가능성을 노크한다. 그렇다면 크리스챤은 왜 이러한 대화관계에 개입하려는 것일까 ? 그것은 첫째 기독교 신앙이란 근본적으로 자기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 봉사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양식있는 기독자라면 신앙의 계명에 따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신 말씀을 실천하려고 한다. 대화는 사랑의 영에 의하여 사랑과 평화를 이룩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진실을 말하고 대화하고자 하는 의지를 촉진시킨다. 대화의 지침에 보면 교회는 먼저 이웃에 살고 있는 타종교 인들을 대화관계로 이끌어야하고 상호 합의 하에 대화의 관계를 지속하며 대화의 상대는 자신들이 속해 있는 지역적 배경에 따라 이념적 종교적 특징을 유지해야 한다. 대화의 참가자들은 우선 먼저 자기 자신으로부터 객관화시켜야 한다. 대화는 공동체 내에서는 교육적 프로그램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대화관계는 대화에 참가하는 모든 이들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함께나누도록 만들어 준다. 대화활동은 공동체내에서 공통의 과제를 추구하는 나눔의 정신을 배양한다. 또한 대화의 관계는 상대가 속해 있는 문화의 특성을 존중해 주는 가운데 예배와 축제와 예전과 명상활동을 통하여 좀더 역동적인 관계로 나가게 한다. 대화 프로그램은 NCC 레벨과 REO 레벨에서 순차적으로 진행 할 수 있으며 다종교간의 대화나 조직간의 교류로 활동범위를 넓혀나갈 수 있다. 2002년 5월 7일-12일 까지 스웨덴 드쥬르스홈에서 Dialogue & Inter Religious Relations 특별위 모임이 있었다. 이 모임에서는 진정 종교는 지구촌 공동체와 신뢰의 문제를 풀어보고 해결할 수 있는 한 분야인가 ? 라는 주제를 놓고 토론하는 가운데 특히 세계화 현상에 따라 지구촌 전체가 신 빈곤에 시달리고 소외가 점증하는 상황에서 개인과 공동체는 인간 안전 문제에 얼마나 깊이 접근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에 집중하였다. 더군다나 종교간의 갈등이 첨예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인과 집단에게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주목하면서 이러한 도전들은 깊은 역사적 뿌리를 지니고 있으며 인류 보편적 책임의식을 자극하는데 반면에 이러한 영향이 똑 같은 이름으로 폭력적 상황을 연출하기도 한다는데 의견을 같이 하였다. 점증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군과 엄청난 크기의 난민이란 존재가 이러한 다종교적 상황을 악화시키는데 한몫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였으며 세속적인 조직과 정부측에서는 이러한 세계화의 혼란상을 해소하는데는 일정하지만 종교조직이나 공동체의 역할이 점고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종교적 유산은 억압적인 정치조치나 배타적인 풍토를 연출하는데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만큼 종교적 관용정신과 사랑과 지혜가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에서는 무엇보다도 개방적이고 열린 지혜의 마음이 절실히 요망되고 있다. 신적 지혜와 개방성이 새로운 개선의 길을 찾는데 절실하지만 역시 제약이 따른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첫째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 겸손과 기쁨 그리고 자유하는 자세를 갖추어야한다. 교회는 타종교와 함께 일한다는 개방적인 자세를 가지고 타종교인들과 협력해야 한다. 스웨덴 회의에서 강조한 바로는 다양한 형태의 타종교간의 대화와 협력이 절실히 요청되며 평화운동과 평화교육 여성운동과 청년 환경운동 지역사회 조직운동 등에 반영되도록 하자는 의견을 모으기도 하였다. 여기에 보다 성숙하고 친밀한 종교간 협력관계를 구축하여 모든 종교적 유산과 신앙정신에 대한 존경의 태도를 가지고 모든 엘리트주의를 거부하고 소망을 회복하고 공동의 위협에 대항하는 정신을 회복하자고 호소하였다. 앞으로 로마 가톨릭교회와 일치위원회가 힘을 합해 특별위원회의 활동을 강화할 것이다. 로마 천주교 일치위의 책임자 아린제 추기경은 이와 관련하여 말하기를 '급변하고 있는 오늘의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전혀 다른 전통과 신앙을 가진 이들을 한자리에 모으게 하였고 정의 평화를 위하는 마음에서 우리사회 일각에서 준동하고 있는 모든 형태의 긴장조성 활동을 중단하고 극단주의를 경계하도록 만들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존엄의 가치를 고양하고 인권과 가정의 행복을 추구하도록 만들고 있다'고 하였다. 세계화에 직면한 모든 인류는 이제 평화 만들기에 전념해야 한다. 그것이 지역적이든 세계적이든 어떤 행태로든지 평화만들기에 전념해야한다. 최근 스리랑카 사태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대화와 협상이야말로 평화로 나가는 첩경이다. 남아프리카의 경우도 예외가 없다. 인도 파키스탄의 경우도 평화협상의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다. 전쟁은 적자생존의 법칙에 의하여 촉발되었다. 이 원칙은 오늘날도 여전히 준수되고있으며 지구상에서의 전쟁의 위협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 결과 약자집단들은 철저히 소외당하고 강자들은 철저히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문명사회는 여전히 다른 이념과 철학을 가지고 있다. 자유의 민주원칙이라든가 박애나 평등정신이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적절하지 않다. 그러나 최근 종교는 잔인한 피의 보복과 분쟁 원망이 판치고있는 현실 속에서 종교적 각성과 책임을 강조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전쟁은 끊임없고 무고한 목숨들을 잃어버리게 한다. 평화는 세속적인 협상으로만 가능하지 않다. 우리는 평화만들기 위한 종교대화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이유는 이미 먼저 지적하였듯이 세계는 평화의 원칙을 지지하면서 종교야말로 인간존재의 심층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중요한 영적 기초를 가지고 있는 조직으로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종교적 통찰과 예언자적 비전을 품고 생명 신학의 단초를 제공하려고 한다. 생명은 일체가 부분적인 것을 거부하고 통전적 전체성을 가지면서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서 하나님이 주신 선물임을 깨닫는다. 이제 교회는 평화운동 단체와 더불어 생명을 담지하는 공동체 안에서 가르치고 훈련하고자 한다. 평화는 우리가 진정으로 생명을 생명의 충만함으로 알고 누릴 때 찾아온다. 종교대화는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서 우리가 진정 꿈꾸고 바라는 평화를 이룩할 수 있는 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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